친구와 그의 남편이 함께 온다고 해서 시래기를 꺼내 삶아 나물을 무쳤다. 친구는 우리 집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 한 끼라도 내 수고를 덜겠다는 마음은 이번에도 변함이 없다. 내일 헤어질 때 시래기나물을 건넬 생각이다. 미리 말하면 혹시라도 안 오겠다고 할까 봐 비밀에 부친다. 설마 안 가져가진 않겠지? 이태원에서 태어나 지금도 이태원에 살고 있는 도시녀지만 그녀의 섬세한 미각을 믿는다. 올해 처음 시래기나물의 진가를 심봉사가 눈 뜨듯 알게 된 나처럼, 친구도 좋아해 줄 것이라 믿는다.
무를 수확하고 무청을 닭들에게 절반 이상 나눠 주었지만 그래도 남은 양이 제법 됐다. 닭들에게 다 줘버릴 수도 있었지만 보관하는 동안 시들고 누렇게 잎이 변해 갈 것이 아까웠다. 너무나 싱싱해서 손질할 것도 없는 무청이기에 활용하고 싶어졌다. 삶아 현관 앞 그늘진 곳에 주르륵 널었다. 호박이나 가지 말릴 때처럼 일일이 뒤집거나, 아침에 내놓고 밤에 거둬들이는 번거로움도 없어 편했다. 서리가 내리는 계절, 큰 일교차와 찬바람에 시래기는 살짝 얼었다 녹기를 거듭하며 잘 말랐다. 열흘쯤 지나 종이처럼 바삭해졌는데, 수분이 완전히 제거된 시래기의 모습은 정말 볼품이 없었다. ‘어디 쓸데가 있겠지’ 생각하고 보관했던 시래기다. 손님들이 올 때마다 꺼내 시래기나물을 만들어 내놓으면 접시에 늘 남는 게 없었다. 저장한 시래기가 줄어들수록 아쉬움은 커진다. 아직 시래기로 나물 밖에 해 먹지 않았는데 말이다. 올해 무 수확을 하면서 필요한 사람들과 나눔을 했는데 내년에도 나눔 하게 된다면 ‘무청은 두고 가세요’라는 팻말이라도 세워야겠다. 올해 나의 건강검진 결과통보서에는 골다공증 의심으로 ‘골절 위험이 꽤 높을 수 있으니 각별한 관리 대상자’라고 쓰여있다. 뼈 건강에 좋은 시래기나물이니 더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다.
우거지는 ‘위에 있는 것을 거두다’ 라는 뜻의 ‘웃걷이’에서 온 순우리말이다. 시래기 역시 순우리말이지만 확정된 어원은 없다. 다만 ‘쓸 만한 것을 골라내고 남은 것’이라는 뜻의 ‘부스러기’가 [부스레기/부스래기/부시래기] 로 변하면서 지금의 말이 되었을 것이라는 견해는 있다. 무엇보다 ‘말린 무청’을 뜻하는 시래기는 우리 정서가 깃든, 정감이 넘치는 토박이 말이다.
시래기나물을 만들면서 시래기가 자연식품에 가까운 식품임을 새삼 느꼈다. 호박과 가지 말림도 마찬가지다. 삶기와 건조라는 가공을 거치긴 하지만 첨가물 하나 없는 자연에 가까운 식품이다. 가공 식품이란 식품분류 체계에서 나온 말로 1~4그룹으로 나뉘는데, 시래기는 비가공 또는 최소 가공식품에 해당하는 1그룹에 속한다. 반면 4그룹은 이른바 초가공식품으로, 대량 생산되는 가공 식료품과 정크푸드, 일부 인스턴트식품이 이에 포함된다. 4그룹에 속하는 초가공식품 섭취가 일부 암 발생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는 해마다 늘고 있으며, 현대인에게 중요한 건강 위험 요인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니 자연에 가까운 먹거리가 얼마나 귀한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텃밭에 이런저런 작물을 심을 때에는 나름대로 ‘이렇게 해서 먹어야지, 저렇게도 먹어봐야지’ 하는 계획이 있었다. 그렇게 먹고도 남은 것들은 말리고, 조청까지 만들어 두었던 지난 일을 돌아보았다. 남은 작물을 버릴 수도 없고 보관도 쉽지 않아 마치 숙제처럼 ‘처리’해야 하는 부담으로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식생활이 마치 수능 4등급에서 1등급으로 올라간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텃밭이 나의 식생활 계획의 터전이 되었지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계획을 넘어 1등급의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저 흙과 작물을 돌보며 그 결실을 누렸을 뿐인데, 결국 자연이 오히려 내 식생활을 돌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친구는 이번에도 시골에 사는 내가 구입하기 어려운 것들을 한 아름 챙겨 왔다. 그동안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나누면서 했던 이야기 중에 내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 것들을 적어라도 두었던 것인지(원래 그녀의 기억력이 비상하긴 했다만) 한가득이었다. 그리곤 마침내 자신이 입고 온 옷까지 벗어 내게 입혀 주고 갔다. 내가 강도를 만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고운 친구, 고마운 친구, 감사한 하루다.(얼치기 농부 김상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