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귀로 사는 교장
- 교장은 공공의 적인가 ⑨
중앙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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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9 07:52 | 최종 수정 2025.01.0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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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 학교에서 교장은 일반적으로 원망(怨望)의 대상이다. 원망은 기대에 대한 불만족의 표현이다.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러이러한 역할을 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기대가 만족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심리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보통 교사들은 교장들이 본인들의 교육적 욕구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거나 선제적으로 지원하고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을 쏟아낸다.
교사들 원망의 일 순위는 민원이다.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학교에서 민원 문제가 야기되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학폭법이 생기고부터이고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아동학대처벌법이 시행된 2021년부터가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이것은 시도에 따라 다르고 도시와 농(어)촌인가에 따라 다를 것이다. 민원의 대상도 처음에는 학교폭력의 가피해자들의 처리문제들이었지만, 점점 생활지도 시 학생에 대한 교사들의 태도, 터치, 언어 등이 문제 되다가 최근에는 평가와 생활기록부 작성문제 등에까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적 장면과 생활장면에서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 근원에는 시장주의적 사고에 세뇌된 학부모들의 소비자 주권의식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행위나 작은 불만 사항까지 내 아이에게 발생하는 것은 참지 않고 민원이나 법적 대응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교사들이 극심한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되고, 이러한 민원현상에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거나, 또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또는 못하는 교장들에 대한 원성이 하늘을 찌르게 된 것이다. 전국적인 현상이다.
교사들의 원망은 교장의 소극행정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학교혁신이란 교육과정을 비롯하여 학교의 많은 문제들을 개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둘러싸고도 원망이 발생한다. 학교혁신을 지지하는 교사들은 학교혁신에 소극적인 교장들을 원망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혁신이니 개혁이니 하는 이런 것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교사들이 학교혁신을 한다고 이것저것 바꾸고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려고 하는 교장들을 원망하게 된다. 하지만 대체로 원망의 대상은 소극행정을 펼치는 교장들에게 집중되기 마련이다. 교장의 역할을 서류결재에 한정하거나 학교에 현안이 발생했음에도 교감이나 부장들에게 일임하고 본인은 뒷짐을 지고 있다면 원망의 포화를 피하기 어렵게 된다.
과거에 우리 학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권위주의 유형의 교장들은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고 본다. 그렇다고 민주적이고 적극적인 행정을 펼치는 교장들이 많아졌다고 볼 수도 없다. 잔소리도 하지 않고 싫은 소리도 하지 않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교장들이 많아졌다. 나쁜 소리는 듣기 싫고 복잡한 문제에서는 한 발을 빼는 교장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학부모들의 요구가 지나칠 정도로 많고, 교사들의 요구도 매우 전문적이고 뾰족해진 시대에 교장들은 눈과 귀를 더 벼려서 예민해지지 않으면 버티기가 어렵다. 교사들의 원망을 사지 않기 위해서는 교장들의 눈과 귀가 예민해야 한다. 굳이 현존의 교장제도를 흔들어 공모교장제도를 도입한 것도 눈과 귀에 예민한 교장들을 모시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권위주의 유형의 교장들이 말과 입으로 살고, 전자결재가 도입된 초기에 교장들이 교장실에서 스스로 고립되어 손가락으로 클릭하고 살았다면, 민주화되고 더욱 복잡한 시대의 교장은 눈과 귀로 살아야 한다. 학교의 문제가 발생하는 현장마다 교장이 자동적으로 임장해야 한다. 교장이 현장에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상시 귀와 눈의 훈련이 잘 되어 있어야 한다. 귀와 눈을 잘 훈련하는 방법은 평소 교사들과 학생들과의 유대의 선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어려움을 겪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자주 만나 들어주는 것. 교사들과 정기적으로 독서모임을 하고, 학교에서 말썽 피우는 학생들을 교장이 직접 글쓰기나 책을 읽어 주는 이른바 ‘독서 경영’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원망(怨望)은 원망(願望) 때문에 오는 것이어서 교사들의 원망을 채워주면 원망받지 않는다. 학교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교감제도를 없애라는 소리는 많이 들어봤어도 교장을 없애라고 하는 소리는 지금까지 듣지 못했다. 할 일이 많다는 뜻이다. 단, 교장은 손과 발 또는 입과 손가락이 아니라 눈과 귀로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주필 전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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