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산책 (68)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5.01.08 08:01 의견 0

김준식(진주고등학교 교사)

만 62년을 살아오면서 올해만큼 감정적으로 힘든 해가 있었나 싶다. 아주 어릴 적에는 몰랐으니 접어두고 어느 정도 인식이 생긴 이후부터 지금까지 굉장한 일들을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해가 갈수록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을 보니 그저 망연자실해질 뿐이다. 사실 며칠 동안 글을 쓰지도 못할 만큼 몸이 아팠고 겨우 몸이 회복하고 나니 비극적 사고로 수많은 사람들이 불귀의 객이 된 사건을 대하니 글 쓰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나 싶어졌다. 겨우 오늘에야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정리하려 하니 참 무서운 세월이다.

슬픔이라는 감정의 본질은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것을 마주할 때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며칠 전의 불행은 그 슬픔의 깊이와 폭이 인간의 범위를 넘는 것이다. 한꺼번에 닥쳐오는 이런 거대한 슬픔을 우리는 이미 세월호에서 겪었고 그 상처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데 또다시 그런 슬픔이 우리에게 닥쳐온 것이다. 망자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분들의 슬픔이야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렵지만 그런 상황을 단지 지켜보는 우리의 슬픔 역시 너무나 깊다.

노자께서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하신 말씀은 아니나 문득 이런 말씀이 눈에 들어온다.

.福兮, 禍之所伏. 孰知其極?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복혜, 화지소복. 숙지기극? 기무정. 정복위기, 선복위요, 인지미, 기일고구.) (『도덕경』 58장 중간)

복(福)이여! 그 속에 화가 숨어 있다. 누가 그 궁극을 알겠는가? 바름이 없다(기준). 바름이 반대로 기이해지고, 선함이 뒤집어 요사해지니, 사람들의 혼란스러움 이미 오래되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비극이 찾아온 것은, 우리의 사소한 방심과 낙관, 그리고 흩어진 마음들이 모인 것이 그 바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살피고 살펴야 하는 일들을 소홀히 하고 따지고 따져야 할 일들은 무심하게 버려둔 우리 모두의 잘못이 이런 비극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복이 있으면 반드시 그 속에 화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여야 하는데, 우리는 그저 복의 즐거움에만 마음을 빼앗겨 미세하게 갈라지는 틈새와 미세하게 흔들리는 상황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이 앞선다.

거대한 슬픔이 우리를 덮고 있지만 그래도 그 슬픔 사이로 다시 돋아나는 것은 그 슬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다. 그리하여 노자께서는 다시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方而不割, 廉而不劌, 直而不肆, 光而不燿.(방이불할, 렴이불귀, 직이불사, 광이불요.)(『도덕경』 58장 뒷부분)

반듯하여도 나누지 않고, 예리하여도 찌르지 않으며, 올곧아도 거만하게 하지 않으며, 빛나도 눈부시게 하지 않네.

원전에는 앞부분의 성인이라는 주어가 있지만 그 성인을 빼면 모두 우리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슬픔을 이기려면,마음을 모으려면 우리는 마땅히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러 마음들이 모여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고, 서로를 위하며, 각자 자리에서 그윽하게 빛나는 세상이 곧 노자께서 바라는 이상 사회였을 것인데,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최소한 2025년은 2024년보다 조금 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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