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씩이나 손에 들고 다니던 여 연 시집을 다른 일에 쫓기다 마침내 다 읽었다. 페북에서 가끔씩 시인의 시를 한 편씩 읽었던 참이라 그의 시 세계가 무척 궁금했었다.

한 마디로, 좋았다. 훌륭하다. 가볍지 않아서 좋았고 무겁지 않아서 좋았다. 진중하지만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다. 뜻이 분명해서 좋았다. 맹목적이지도 않았고 무언가 강요하지도 않았다. 짧은 시 한 편 읽으면서도 시의 앞과 뒷이야기를 맞춰보지 않아도 금방 쉽게 이해가 되었다. 시 한 편 읽는데 머리를 썩히면서 읽을 필요가 있겠는가? 해설이 필요 없는 시가 좋은 시라고 평소 믿는 바처럼 해설이 따로 필요 없는 시들이었다.

어머니, 꽃, 바람, 이별(別), 신화(미궁)로 5개 부部로 구분된 시들은 시의 주제별로 합당하다. 시인의 어머니만큼 연로한 노모를 모시고 있는 사람으로서 1부 ‘아, 어머니의 시’들은 가슴에 통증을 불러왔다. 자식을 뜻하는 슬하라는 말의 슬膝에서 어머니의 무릎에서 나의 무릎으로 나의 무릎에서 이웃의 무릎으로의 넘나듦이 능수능란하다.

무릎 아래에서 무릎으로 기던 시절이 기억나지 않는다

무릎과 무릎을 맞대고 웃던 시간이 생각나지 않는다

무릎에서 잠들었던 적

무릎 사이를 걸었던 적

무릎 사이에서 까무러쳤던 적

엄마의 무릎 밑으로 가고 싶어서 무릎 밑을 떠나고 싶

지 않아서 무릎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서 슬하를 붙들

고 놓지 않았다 여자의 무릎이 예뻐서 결혼했다는 사람

의 애기를 듣다가 내 무릎은 왜 상처 투성이일까 생각

했다 무릎 위에 찜질팩을 올리다가 전기 찜질을 하다가

적외선을 쬐다가 비 오는 날 무릎을 주무르다가 펴지지

않는 무릎을 펴다가 무릎을 잘라 내고 엄마의 마른 무

릎에 앉고 싶었다

- 슬하에서 슬을 잡다

다른 부의 시들 즉, 꽃은 꽃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이별과 미궁은 또 그대로 그의 삶에서 나온 내용이 있는 것들이었다. 단순한 영탄이나 터무니 없이 큰 소리, 비판과 훈계도 없다. 그의 삶의 현장에서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조그조근 이야기하고 있다. 세월호의 아픔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 아래의 시는 그래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어처구니 없는 맷돌

바다 밑에서 돈다

인어의 눈물은 진주가 된다는데

놀란 맷돌의 눈물은

소금꽃으로 피어난다

세상에서 피우지 못한 꿈

꽃비가 내리는 4월에도

여전히 한겨울인 맹골

찬 바다에서는 벚꽃 대신

소금꽃이 하얗게 핀다

- 소금꽃

한 권을 끝까지 읽기가 어려운 시집이 많다. 그래서 잘 해야 한 번 읽는다. 이 시집은 두 번 읽었다. 여연의 시는 그의 말대로 ‘말의 향연’이다. 그러나 단순한 말의 유희가 아니라 눈물과 그림자를 안은 말이며, 별빛이 흐르는 마음의 강이다. ‘지하철 승강장’에서나 ‘통쾌痛快’ 같은 시를 읽어보라. 그가 어떻게 말을 부리고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시인에게나 독자에게나 시를 통해 상처가 꽃으로 피어나기를 빈다.(전종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