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병(공주대학교 교수)

요즘 역사교육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예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배제적 방식의 글쓰기가 종종 보인다. <역사교육 첫 걸음>이란 책을 보다 눈에 들어오는 몇 대목에 관해서 적어본다. 단행본으로 나왔고 교사를 지망하는 이들이 많이 보는 책이라 하니 한번은 언급하는 것도 의미있겠다 생각한다.

1.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사’와 ‘역사학의 연구 방법이나 역사적 사고 기능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사’가 있는 것으로 언급하는데, 이렇게 역사교사를 분류하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다. 아마 대개는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사고 둘 다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할 것이다. 후자가 중요하다해도 전자가 전제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지적도 나올 것이다. 현실의 세계는 매끄러운 단면으로 쪼개지지 않는다. 거기에 연구의 어려움과 매력이 동시에 존재하는 거 아닐까? 두 유형으로만 접근하는 것도 어색하다. 글쓴이가 역사적 사실의 습득보다 역사적 사고의 학습이 비교우위에 있음을 부각시키기 위해 단순 설정을 하다 보니 생긴 문제가 아닌가 싶다.

2. 2015 중학교 역사교육과정에서 설정한 목표가 ①역사의 주요 사건과 개념 이해, ②다양한 역사 자료를 비교 분석하고 증거에 기초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적 설명을 구현하는 능력 함양, ③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역사적으로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 배양, ④민주와 평화의 정신을 존중하는 자세 함양이다.

①은 역사의 전체적인 흐름과 내용에 대한 이해를 중요하게 여기는 입장, ②는 역사학이라는 학문의 지식이 구성되는 방식 또는 역사 지식의 구성적 해석적 성격을 강조하는 입장, ③과 ④는 민주시민으로서 소양 함양을 중요하게 여기는 입장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국가 교육과정에 제시된 이러한 목표 중에서 어떤 목표에 좀 더 초점을 맞출지 생각해 보자고 한다. 교과 목표가 어떤 지분 경합의 장인가? 마치 세 개의 다른 입장을 가진 이들의 견해가 반영된 것처럼 설명하였다.

교육과정 문서를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까? 역사 학습을 지식 습득→분석 능력→문제 해결 능력→시민성 함양이라는 방향성을 염두에 두고 문서가 작성된 게 아닐까? 4가지 중 어떤 것을 선택하거나 더 중시하거나 할 것이 아니라 상호 유기적 관계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게 합당하다고 본다. 취사선택하거나 어느 것을 더 강조할 건 아니다. 가령 역사적 사고력을 위해서는 지식 습득도 필요하고, 역사적 사고력이 성장하면 문제 해결력도 높아질 수 있는 거 아닐까? 분리해서 볼 것이 아니라 관계성을 염두에 두면 교육과정이 훨씬 역동적으로 보인다.

3. 수업 사례를 소개하는 부분을 보면 교사 B의 경우는 현대사에서 노동을 강조하고자 1970년대 경공업의 성장 부분을 여성 노동과 전태일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경공업에서 여성노동자의 역할이나 전태일은 이미 교과서에서도 많이 다루고 있다. 이 사례의 교사가 국가 교육과정을 ‘억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자의적이고 편향적’으로 본다고 기술하였다.

이런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는 필자가 어디에 근거한 판단인지 인터뷰를 하거나 사례를 치밀하게 분석해서 논증해서 밝혀주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어디에 근거해 판단했는지 드러나지 않는다. 교사 B가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교사이니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판단한 것일까? 수업 사례를 소개한 교사의 기술만으로 이런 판단을 했다면 해석의 과잉이다. 자칫 연구 윤리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필자가 어떤 대상을 선험적으로 규정한 건 아닌가 싶다. 이 책의 주요 맥락 중 하나가 증거에 기반해 역사를 학습하는 훈련을 예비교사들이 해보자는 거다. 주장만큼이나 글쓰기도 치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서 이 글을 전개하면서 국가 교육과정이 개별학교나 학생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며 교사가 교실 상황에 맞게 변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국가교육과정이 개별 학교나 학생의 상황을 고려해 개발될 수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건 별개의 문제로 하고, ‘교사가 교실 상황에 맞게’ 바꾸어보려 노력했던 것으로 볼 수는 없을까?

4.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로자 파크스를 인터뷰하는 설정의 수업 사례가 있다. ‘주제 중심의 사회과 수업’이며 ‘통합 사회과 수업에서 취하는 방식으로, 진정한 의미의 역사 수업이라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동학농민운동 당시의 농민군 입장에서 글을 써보는 활동도 동일한 잣대로 문제가 있는 수업으로 치부된다.

이렇게 칼로 무 자르듯이 제대로 된 역사 수업이 아니라고 판가름할 수 있는 것일까? ‘역사학의 독특한 인식 기반과 절차에 따라 자료에 근거하여 과거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진정한’ 역사 수업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가상 인터뷰 방식은 많이 사용하는 역사 수업의 방식이고 교과서 활동에도 등장한다. 김춘추나 묘청 등 역사적 행위자의 선택을 놓고 상황이나 심경 등을 추체험 혹은 감정 이입의 방식으로 접근한다. 혹여 ‘과거는 낯선 나라’이니 오념(誤念)을 심어줄 수 있어 하지 말라고 한다면 너무 가혹한 거라 생각한다.

역사 인물에 대한 가상 인터뷰 방식의 수업이 역사 수업이 아니라면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이상한 역사 수업을 해온 게 된다. 이렇게 접근하면 제대로 남아날 수 있는 역사 수업이 얼마나 될까? 태정태세문단세나 미미광어는 역사학습일까? 아닐까? 역사 학습의 지향성 측면에서 논쟁이 있을 수는 있으나 이것 자체를 역사 학습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자료 기반의 역사 학습을 강조하는 것은 나름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갖는 가치에 관해 설득력 있게 설명하면 된다. 그런데 자료에 기반하지 않으면 역사 수업이 아니라는 식의 판단은 적절하지도 않고, 역사 수업의 다양한 가능성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리 말하면 내 말에 동의하지 못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의견대로 존중한다. 유기적으로 혹은 통합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분절적 혹은 대립적으로 접근하는 데서 나오는 경직성이 아쉽다 싶어 몇 자 적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