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마스 광장


다음날 일정은 작은 갈라파고스라 불리는 바예스타스 섬으로 가서 홈볼트펭귄과 바다사자를 만날 것인지 아니면 경비행기를 타고 라스카 지상화를 볼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두 곳을 모두 보고 싶었지만 나는 마추픽추와 우유니 사막과 함께 버킷리스트였던 라스카 지상화를 선택했다. 라스카 지상화는 라스카강 주위 사막인 지표면에 그려져 있다. 기원전 300 경에 그려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크기와 정교함으로 오랫동안 초고대문명설의 근거가 되었던 기하학 도형과 동식물들의 그림이다. 각각의 그림은 최대 300M 크기로 오직 하늘에서만 온전하게 볼 수 있다. 그래서 경비행기를 타야만 볼 수 있는 것이다. 1만 년 정도로 추정되는 시간 동안 나스카 지상화가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사막 지역의 특성인 한류와 사막 지형의 기후 영향으로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바람도 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세 이후의 인간에 의해 파괴되던 다른 곳과는 달리 인간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아서이다. 미래에는 여느 조건에 의해 라스카 지상화를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경비행기에서 촬영한 지상화


기원전 100년에서 서기 800년까지 활동했다는 라스카 문명인들이 그린 지상화를 보기 위해 경비행기를 타고 사막을 가로지르며 날았다. 곳곳에 모래 산맥과 강줄기의 흔적을 숨겨놓고 있는 사막은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180도로 도는 비행기 속에서 멀미를 참으며 숨은 그림찾기를 하였다. 멀미 중에도 거미, 고래, 원숭이, 벌새, 소용돌이. 콘도르 등 여러 개의 지상화를 보며 내가 이 그림들을 직접 눈으로 보다니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현재 우리가 라스카 지상화를 볼 수 있는 것은 1955년 페루 정부가 라스카 지상화를 수몰시키려고 했을 때 독일의 고고학자인 마리아 라이헤(1903~1998)가 결사 반대를 외치면서 1940년대부터 페루에 살며 라스카 지상화를 연구하고 지켜낸 덕분이다. 마리아 라이헤는 라스카 지상화는 라스카인들에 의해 천문학적인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한 근거로 라스카 지상화의 새 그림과 거의 같은 새 문양이 라스카 인들이 실제 사용하던 도자기에 남아 있는 것을 예로 들었다. 라스카 지상화를 위해 평생을 바친 독일의 고고학자인 마리아 라이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경비행기에서 촬영한 지상화, 흐리다


페루의 바다

새들이 가는 나라

새들이 가서 죽는 나라

로맹가리*를 찾아 떠난다

여자의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면 난

이 바닷가에서 사랑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사랑하지 않아서 죽어간 페루의 새들

나는 아직 페루에 있어요

아침마다 해무 속으로 죽음에 이른 새를 날려요

이중성으로 가득한 바다는 뭍에 닿는 순간 부서지고

새의 날개에서 태어난 슬픔은 쌓여 섬이 되지요

제 살을 파내어 흰 꽃을 피우는 바다

섬을 삼키는 바다의 방식은 진부해요

날다날다 주저앉고 싶을 때

갓 태어난 슬픔이 함께 날아가요

그 무게가 세상의 무게였다는 내막

제 죽음을 쌓아놓고 떠나는 새들

사랑의 앙금이 슬픔이라 해도

바닷가에서 만난 여자의 진실을 믿지 않기로 했다

슬픔은 목적지가 아닌 과녁 너머에 있다는 가설

고통으로 절여진 가슴뼈를 펼치면

바다의 끝 섬에 닿을 수 있을 것도 같아

점자로 튀어 오르는 당신의 심장을 읽는다

슬픔에서 빠져나와 슬픔을 바라보는 새들

은밀했던 죽음의 시간에 닿으면 울음소리를 공중에 띄운다

해무를 낳고 있는 페루의 바다

해무로 흩어지는 새의 노래를 듣는다

*로맹가리 :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외 다수. 《자기 앞의 생》 로맹가리의 다른 이름인 에밀아자르로 발표. 로맹가리 사후 유고집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을 통해 로맹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인임이 밝혀짐

* 김양숙, 1990년『문학과 의식』시 등단, 2009년 [한국시인상] 수상, 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상, 2013년 부천문화예술발전기금수혜. 202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활동비 수혜, 시집『지금은 뼈를 세는 중이다』,『기둥서방 길들이기』,『흉터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고래, 겹의 사생활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