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 산곡남중 교장)
오늘날 대한민국 교육 현실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떠올린다. 이는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오래된 교훈으로 오늘날 우리의 학교 현장을 비추는 거울이자 경고라 할 것이다. 보다 압축하면 학생들은 넘칠 정도로 배우고 있는데 정작 ‘배움’은 부족하다는 말이다. 학부모는 넘칠 정도로 투자하지만 아이의 성장은 오히려 흔들린다. 교사는 넘칠 정도로 업무를 수행하지만 교육의 본질은 비어간다. 과도한 구조 속에서 본질이 사라지는 상황, 이것이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 교육이 안고 있는 근본적 모순이다.
고3 서윤(가명)의 하루를 들여다보면 이 사자성어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서윤이는 수업·내신·모의고사·학원을 빽빽하게 채운 ‘과잉의 일정’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는 선뜻 답하지 못한다. 그의 학습은 ‘축적’되어 보이지만, 그의 진로는 ‘결손’ 상태다. 노력은 넘치지만 방향성은 부족한 이 모순적 구조야말로 한국 교육을 사로잡고 있는 ‘과유불급’의 실체라 할 것이다.
넘침과 부족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교육의 역설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로 높기가 유명하지만, 그 교육열이 곧 교육의 질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단순히 과한 경쟁이나 지나친 사교육 때문만이 아니다. 교육 내부의 과잉과 부족이 동시에 존재하는 구조적 역설이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요약하면 ▲정보는 넘치지만 선택 기준은 부족하다. ▲수업은 많지만 학습의 즐거움은 부족하다. ▲입시는 정교하지만 성장의 스토리는 부족하다. ▲평가 지표는 풍부하지만 학생 이해는 부족하다. 이런 과잉·결핍 구조는 결국 학생을 소진시키고, 교사를 무력하게 만들며, 학부모를 불안하게 만든다.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 – ‘적정한 교육’의 설계가 필요하다
이제 우리의 논점은 명확하다. 한국 교육이 넘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더 많이’가 아니라 ‘얼마나 적정한가’의 문제라 할 것이다. 즉, 교육의 양적 증대가 아닌 구조적 균형을 바로잡는 일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첫째, 공교육의 적정성 회복이다. 지금처럼 학교가 입시의 예비 단계로만 기능하는 구조에서는 아무리 많은 수업이 이루어져도 배움의 내적 성장은 일어나기 어렵다. 교사가 수업 설계와 학생 관찰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행정 부담을 줄이고, 학교를 ‘학습 경험의 중심’으로 복원되어야 한다. 둘째, 평가의 단선 구조 탈피가 필요하다. 점수 중심의 단선적 평가 방식은 학생의 잠재력을 왜곡한다. 다층적 성취 평가, 행동 특성 평가, 탐구 기반 프로젝트 평가 등을 병행해 학생이 성장하는 여러 경로를 제도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는 사교육 종속을 줄이고, 학교 수업의 의미를 강화하는 즉, 공교육을 살리는 효과도 갖게 될 것이다. 셋째, 학부모·학교 간의 신뢰 재구축이 절실하다. 지속 가능한 교육 구조는 결국 신뢰에서 비롯된다. 학부모에게는 투명한 교육 정보 제공과 의견 반영 구조를 마련하고, 교사에게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신뢰는 교육을 ‘경쟁’이 아니라 ‘협력’으로 전환시키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달라져야 할 우리의 교육의 방향 –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교육은 중국의 고사에 나오는 어리석은 농부의 ‘발육조장(發育助長)’처럼 서두르는 과정이 아니어야 한다. 성장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이며, 경쟁의 강도가 아니라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더 많이, 더 빨리’라는 조급한 가치에 머물러 있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과유불급이다. 이제 한국 교육이 향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교육이 넘치는 부분을 덜어내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학생 각자가 자신의 진로를 주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적정한 교육 생태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제도 개선이 아니라 교육 철학의 재정립이 필요한 과제다.
과유불급을 넘어,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교육으로
결론적으로 오늘의 교육을 ‘과유불급’이라 진단하는 이유는 단지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나침을 경계하고, 본질을 되찾기 위함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육은 새로운 것을 쌓기만 하는 교육이 아니다. 배움의 본질을 따뜻하게 되새기며, 그 위에서 새로운 길을 여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교육이어야 한다. 이 속에서 비로소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의 가르침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교육이 이렇게 변화할 때, 학생들은 더이상 과잉의 피로 속에서 헤매지 않고, 부족함의 불안을 끌어안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 교육은 ‘더 많은 교육’이 아닌 ‘더 좋은 교육’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