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의 겨울

반달못

산꼭대기 잔설이 눈에 들어오니 겨울이 온 것이다. 아침마다 연못이 얼지 않았는지 살피는 것이 일과 시작이 되었다. 추운 겨울은 가난할수록 혹독하게 마련이다. 계룡산 정상에서 시작된 단풍이 마을로 내려와 어디론가 가버리고 밤마다 부엉이가 춥다고 우는 계절이 되었다. 이 겨울 모두 등 따습게 지냈으면 좋겠다.

'어퍼컷'은 권투에서 나온 용어다. 몸의 중심에서 하늘로 올려 치는 동작을 말한다. '훅', '스트레이트'와 함께 주먹질의 주요 동작이다. 옛날 프로복싱이 대중적으로 유행을 탈 때 '돌주먹 문성길' 선수의 올려치기는 두려운 위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아마추어 선수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후 프로로 전향해 세계를 제패하고 여러 번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던 대표적 인물 중 하나였다. 텔레비전 앞의 국민은 환호했고 그가 어퍼컷을 날릴 때마다 상대의 턱에 적중하는 모습을 보고자 했다. 특히 수세에 몰릴수록 시원한 한 방이 터지길 목마르게 기다렸다. 그럴 때 텔레비전 앞의 모든 사람은 손에 땀이 나도록 주먹을 쥐었고 나의 주먹도 덩달아 수없이 허공을 질러댔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어퍼컷' 하면 거스 히딩크의 그것이 가장 통쾌한 한 방이었다. 그가 주먹을 불끈 쥐고 운동장에서 하늘로 주먹질하는 모습을 온 국민이 간절히 기대했었다. 그의 첫출발은 초라했다. 유럽 전지훈련을 나가 무참히 깨져 그의 별명이 5대0이었다. 그러나 그는 실패를 통해 극복의 열쇠를 찾아냈다. 결국 그는 '태극전사'를 이끌고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창조했다. 그해 히딩크는 우리의 영웅이었으며 그의 어퍼컷 한 방은 우리 역사상 가장 빛나는 한 방일뿐만 아니라 월드컵 역사에 남을 주먹질이 되었다.

이처럼 스포츠 무대의 화려한 '어퍼컷'과 다르게 일상 속의 주먹질은 우리를 불쾌하게 하거나 불안하게 한다. 몇 해 전 대선 후보 중 한 후보가 유세장에서 질러대는 그것은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남미의 어느 나라에서는 체인톱을 들고 유세하여 세계 뉴스에 회자하였다. 승부가 있는 곳에서 누구든 지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판에서 폭력을 희화해 승리를 거머쥐는 것은 온당치 않다. 정치는 상생의 미학이다. 진영을 나누고 쟁패하는 것은 더 잘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인 것이다. 따라서 선거가 끝나면 선거기간 나뉘었던 진영에서 벗어나 승자의 지도력 아래 다시 하나가 되어 과거와 현실을 딛고 미래로 가야 한다.

오늘날 '스트롱맨'의 등장으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다. 개인, 집단, 정당, 국가 모두 제 앞가림하기에 급급할 뿐 상대를 살필 겨를이 없어 보인다. 결국 변증법적 논리로 세월 따라 흐름이 바뀔 테지만, 그 기간 국민의 고통은 누가 보상해 줄까? 유세장에서 겉저고리 단추를 풀고 거듭거듭 주먹질을 해대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그의 주먹질이 누군가의 턱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불법과 비리를 시원하게 날려줄 것을 유권자들은 기대했다. 그리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시 생각하는 아침이다.

이응우 작, 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