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호(교사)

1. 1교시 시작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아직 학교에 오지 않은 아이가 있어 학교 전화를 이용해 가정으로 연락합니다. 보호자 역시 출근하신 모양입니다. 통화가 되지 않습니다. 지각으로 표기하고 수업을 시작합니다. 수업 중 아이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지각의 이유를 물으니 잠을 못 자서라고 합니다.

2. 숙제도 없는데 왜 잠을 못 잤느냐고 물으니 로*록스라는 게임의 이벤트 때문이라고 합니다. 새벽 2시에 열리는 이벤트에 참여하려면 잠을 잘 수가 없다는 겁니다. 로블록스 사용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초등학생이 이벤트에 참여하려면 밤을 새워야 하는 현실이라는 걸 아마 로블록스 기업은 모르는 듯 합니다.

3. 대부분의 온라인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입니다.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하루 24시간 중 얼마나 오랫동안 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만든 앱에 접속하느냐가 그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을 결정합니다. 이처럼 기업의 이익은 아동·청소년의 성장에 관심이 없습니다.

4. 유명인을 사칭한 사기 광고가 횡행하는 사회연결망서비스가 있습니다. 사용자들이 신고를 해도 실제 광고를 제재하지 않는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광고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불법사기광고를 제재하지 않아 내게 되는 벌금보다 적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인들의 안전한 사회적 연결보다 기업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CEO의 목소리가 사기 피해자들의 목소리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가 과연 정상인지 의문입니다.

5. 이 뿐만이 아닙니다. 온라인 도박, 사이버 학교폭력은 학교가 교육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만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삶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성숙한 학생 개개인과 이들을 양육하는 보호자의 책임으로 떠넘길 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일은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6. 무엇보다 기존의 청소년 보호법이나 정보통신망법만으로는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디지털 환경의 특수성을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별도의 ‘아동청소년 디지털 보호법’제정이 시급합니다.

7. 예를 들어 아동 청소년에게 유해한 콘텐츠를 추천하지 않도록 알고리즘에 대한 투명성 의무와 안전 설계 의무를 부과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유해 콘텐츠 신고 시 즉각적인 조치 및 삭제 의무를 강화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강력한 법적 처벌규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아직도 반복되는 불법 영상 유출로 인한 사회적 문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8. 그 외에도 미성년자 시절 자신이 올렸던 게시물이나 데이터를 성인이 된 후 쉽게 삭제하고 수정할 수 있는 권리, 건강한 수면습관을 통한 발달에 적합한 일주기리듬을 위해 하루 9시간 이상의 온라인 미접속할 권리, 아동청소년의 연령 확인 절차를 강화하고 이들의 취약성을 이용한 상업적 광고 노출이나 프로파일링을 근본적으로 금지하는 법이 필요합니다.

9. 이미 미국에서는 1998년에 만들어진 COPPA (Children's Online Privacy Protection Act)이 더 강력한 입법이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2018년에 만들어진 GDPR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과 작년에 적용하기 시작한 DSA (Digital Services Act)를 통해 아동청소년에게 미치는 부정적 디지털 환경의 영향을 줄이기 위한 법적 조치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10. ‘아동청소년 디지털 보호법’은 국가통계연구원에서 지난 10월에 발간한 ‘아동청소년 삶의 질 2025’ 보고서에 ‘디지털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해 필요한 제도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아동·청소년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안전 설계(Safety by Design)’ 원칙을 유튜브, SNS 등 주요 디지털 플랫폼 기업에 의무적으로 적용할 법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1. 우리나라도 더 이상 디지털 환경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부정적 사건에 대해 학교와 가정에 책임을 넘기지 말고 사회가 그 책임을 다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교육부, 그리고 국회 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원회와 교육위원회가 함께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