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도착한 칠레의 깔라마 숙소는 도시의 변두리에 있었다. 내일 아침 9시에 바로 산티아고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그러니까 깔라마는 중간 기착지로 잠만 자는 숙소였다. 짐을 풀지 않기로 하고 저녁은 호텔 내 레스토랑에서 해결했다. 나는 대강 씻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스 아메리카가 마시고 싶은 딸이 호텔 밖으로 나가 한 30분을 헤매다 문을 연 카페가 없거나 문을 열어도 지금 마감하는 시간이라며 주문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에서 20분이면 차를 몇 잔이고 만들어 팔 시간인데 허탕 치고 그냥 들어왔다. 이제 여행은 21일 차다. 점점 몸이 갈구하는 아이스 아메리카와 한식이 그리운 시기가 된 것이다.
깔라마 공항의 기념품 삽에서 청금석이라고도 불리는 라파즈 라즐리로 만들어진 모아이 석상을 보았다. 원석 문양이 그대로 드러나게 만들어진 모아이 석상은 아름다웠다. 사고 싶은 마음에 가격표를 봤는데 59000페소였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91,000원이다. 너무 비싸다. 나는 칠레의 상징인 라파즈 라즐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아이 석상이 사고 싶은 것이다. 칠레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딘가에 내가 원하는 비싸지 않은 모아이 석상이 있겠지 하며 얼른 포기했다.
산티아고행 비행기에 올라 2시간 남짓 비행한 후 해발 500m에 있는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오는 동안 멀리 안데스산맥 자락이 사막화가 되어가는 황량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또한 기후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숙소는 깔라마와 달리 시내에 있었다. 짐을 풀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한국에서 걸려온 후배의 전화였다. 전화를 받으며 무심코 나 지금 산티아고에 있다고 하자. 선배님 좋겠다. 저도 산티아고 길을 걸어보고 싶었는데 부럽다는 말을 했다. 아니 여기는 스페인의 순례길 산티아고가 아니라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야 라고 설명하다 길어질 것 같아 나중에 통화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산티아고 하면 우리는 대부분 스페인의 순례길 산티아고를 떠올린다. 스페인의 산티아고는 스페인의 갈리시아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위치한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사도 성 대(大) 야고보가 묻혀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목적지로 하는 순례길을 말한다. 순례길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인 노란 가리비의 화살표가 표시되어있다. 영어권에서는 세인트 제임스(St. James)로 불리고, 불어권에서는 생 자끄(Saint. Jacques)로 불리며, 스페인어 권에서 산티아고(Santiago)로 불린다. 삶에 지친 많은 현대인들이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걸으며 누군가는 종교적 의미를 넘어 심신의 치유와 자기 발견의 시간을 갖는 길이며 그리고 누군가는 존재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하며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길이다. 제주도에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씨도 스페인의 순례길을 걷고 와서 제주도에 옛날 해녀들이 물질하러 다니던 길을 개발해서 올레길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산티아고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우선적으로 스페인의 순례길을 떠올리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스페인에 갔을 때 길바닥에서 콤포스텔라 대성당으로 가는 순례길의 표시인 노란 가리비 화살표를 봤던 기억이 났다. 산티아고 하면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보다 스페인의 순례길 산티아고가 먼저 생각이 나는 것은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뇌에 첫 번째로 인식된 단어이거나 많이 들었던 단어가 스페인의 산티아고라서 오는 지역 명사의 오류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 김양숙, 1990년『문학과 의식』시 등단, 2025년 탄리문학상 수상, 202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활동비 수혜, 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상, 2013년 부천문화예술발전기금수혜. 2009년 [한국시인상] 수상, 시집 『종이 사막』,『지금은 뼈를 세는 중이다』,『기둥서방 길들이기』,『흉터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고래, 겹의 사생활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