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 산곡남중 교장)
“Non vitae sed scholae discimus(We learn not for school, but for life)”
이 유명한 표현은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형태로 “우리는 학교를 위하여가 아니라 삶을 위하여 배운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기원전 4년 ~ 서기 65년)의 『Lucilius에게 보내는 도덕 서신(Epistulae Morales) 제106편』에 기록된 원래 문장은 “Non vitae sed scholae discimus”로, 학교 학문이 삶에 실용적이지 않다. 즉 “우리는 학교를 위하여 배우며, 삶을 위하여 배우는 것이 아니다”는 당시의 학문적 성향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쓰였음을 돌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장이 부여하는 교육적 의미는 무엇인가?
1. 교육의 목적과 현실 간 괴리
이 표현은 교실에서 배우는 것과 실제 삶에서 필요한 것 사이의 간극을 생각하게 만든다. 학교 시험, 평가, 성적 중심의 교육이 삶의 문제—윤리, 관계, 책임, 고난, 실패—등을 제대로 다루지 못할 때, 배움이 삶을 풍요롭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담이 되기도 한다. 이는 실용주의를 강조하고 국익을 우선하려는 전 세계적 흐름에 맞추어 우리의 교육도 마찬가지로 기능해야 한다는 시대의 요구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2.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
세네카는 학문 그 자체 혹은 지식의 과잉이 자칫 삶의 본질적 유익을 가리게 되는 현실을 경고한 셈이다. 배움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어야 하며, 학생은 배우는 내용이 자신과 공동체의 삶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AI)이 삶의 전 영역에 들어온 현대는 바로 이 비판적 사고야말로 교육에서 길러야 하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 할 것이다. 이는 근대에 와서도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 역시 “나는 생각(회의)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언과 유사한 맥락을 내포한다고 할 것이다.
3. 삶 중심의 교육 제고
만약 교육이 삶에 유익하지 않다면, 삶의 총체적인 맥락—도덕, 공동체성, 환경, 인간관계, 고통과 기쁨—등을 교육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한다. 오늘날로 치면 인성교육, 민주시민교육, 사회정의 교육, 비판적 미디어 리터러시 등 다양한 실용적이고 윤리적인 학습 영역이 중요한 이유라 할 것이다.
4. 전통적 교육 이념과의 비교
공자의 온고지신이 과거와 전통을 통해 새 것을 깨닫는 균형 잡힌 배움을 강조한다면, 세네카의 문장은 “학교 중심 교육(system)이 삶 중심 교육(life)이 되어야 한다”는 방향 전환을 요구한다. 이는 우리 교육이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존재와 행위(being and doing)의 연속성, 삶 속에서의 자기완성과 타인 공감,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의 성장을 지향하는 것으로 교육의 목표와 비전을 세울 수 있다.
5. 두 표현의 만남: 교육 철학의 장대한 대화
“온고지신”과 “Non vitae sed scholae discimus”는 서로 다른 문화와 시공간에서 나왔지만, 교육의 본질에 대해 놀랍도록 유사한 울림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전통을 존중하되 반복만이 아닌 혁신을 통한 성장을 설파하고, 다른 하나는 형식만의 교육이 아닌 삶의 실제성을 중심에 둔 배움을 촉구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이 두 사상은 교육자와 학습자 모두에게 ①배움은 평생의 과정 ②교육내용과 방식의 통합성 유지 ③ 전통과 혁신의 조화 ④비판적 성찰과 실천의 강조를 주문하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맺는 말
교육은 단순히 정보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올바르게 살고, 공동체 속에서 함께 성장하며, 삶의 의미를 발견해 가는 여정이라 압축할 수 있다. ‘온고지신’이 우리에게 전통의 안을 돌아보고 새 것을 깨닫는 지혜를 준다면, 세네카의 표현은 우리가 교육 시스템과 삶의 접점을 재검토하고, 배움이 실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지 스스로 묻도록 촉구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배움이 ‘학교’ 안에만 가두어지면 그 자체로 끝날 수 있지만, 우리의 삶은 학교 밖의 모든 영역의 장(場)으로 퍼져야 한다는 점이다. 배움은 살아 숨을 쉬어야 한다. 이제 우리의 학교 기능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의 핵심 지식은 그 자체로 충실하게 이해하되 현재를 살아가는 원동력으로 작동시켜 삶과 지식이 유리되는 일이 없이 배움이 ‘삶의 힘’을 기르는 기쁨이자 행복의 원천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