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노는 것을 마냥 아까워하시는 이웃(나의 농사 사부)이 서리태 종자를 주시며 “저기에 (두 손을 벌려 보이시며) 이렇게 간격을 두고 심어요”, “서리태는 웅장해요” 말하고는 가셨다. 그게 전부였다. 5월 중순의 어느 날이었다. ‘저기’는 내가 포기한 돌투성이 땅이다. 졸지에 미션을 받은 셈이다. 마다하지 않고 콩을 키워 볼 엄두를 낸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비옥하지 않은 땅에서도 콩은 잘 자란다는 것이 국민 상식이니 실패할 염려가 없을 테고, 다른 하나는 서리태 콩국수의 맛을 잘 알아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웅장하다는 것이 뭔지, 여느 작물과 뭐가 다른지 전혀 알지 못하고 마치 심기만 하면 저절로 자랄 것처럼 생각하고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의 검색어 1위는 ‘서리태’가 되었다.

콩은 직파直播를 해도 싹이 잘 난다고 하지만 돌투성이 땅이고 아직은 아침에 서리가 내리기도 해서 모를 내기로 했다. 모종 트레이에 상토를 채우고 콩을 한 알씩 손가락으로 꾹 눌러 넣고 온실 박스 안에 넣어 두었다. 뚜껑이 투명한 온실박스를 볕 잘드는 곳에 놓고 날마다 물을 주었다. 싹을 기다리면서 돌밭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나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호미질을 하고 남편도 괭이를 잡았다. 열흘 후에 온실 박스 안의 모종 트레이에서 떡잎 두 장이 합장한 듯 맞대고 나왔다. 합장한 진초록의 떡잎 두 장은 조금씩 벌리며 크고, 벌어진 떡잎 속에서 본잎이 나왔다. 며칠 후 어설프게나마 고랑과 이랑을 만든 돌밭에 아주심기를 했다. 모두 85주였다.

알고 보니 서리태는 순치기가 관건이다. 순치기란 성장점의 새순을 잘라 위로 자라는 것을 억제하고 곁순을 유도하여 더 많은 꼬투리를 맺게 해 콩이 많이 열리게 하는 것이다. ‘과감하게 잘라 줘야한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순치기 방법이다. 대규모 콩밭의 순치기는 예초기로 한다. 무지막지하게 잘라 내는 듯 보이지만 순을 고르게 쳐내는 영상은 내 눈에 전위예술로 보인다. 나도 과감하게 자르려고 가위를 들고 콩 앞에 섰지만 그렇게 하질 못했다. 매우 진한 초록의 콩잎은 크고 위풍당당(웅장함이라고 표현한 것을 알 것도 같은)했다. ‘어 어 어?’하는 사이에 콩은 폭풍 성장하며 훌쩍 커버려 웃자란 결과를 낳고 말았다. 웃자란 줄기는 아름다웠지만 연약했고, 때마침 사나운 바람을 동반한 폭우에 이리저리 서로 얽혔다. 지속되는 기습폭우와 사나운 바람에 비스듬히 기울어져 뿌리가 들릴 지경으로 보였다. 순치기를 잘했다면 수평으로 안정감 있게 가지를 퍼뜨려 이런 지경은 오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손을 써야 했다. 비가 잠시 잦아든 틈을 타 우비를 입고 얽힌 것을 풀어 주고 기울어진 것에 지지대를 세워 묶어 주는데 비가 다시 미친 듯이 퍼부었다. 고랑에서 무릎걸음으로 뿌리가 들리지 않도록, 가지가 꺾이지 않도록 애썼다. 엉망 직전의 콩밭에서 내 몸도 엉망 직전이다. 김영화 작가의 《시골에서는 고기 살 돈만 있으면 된다면서요 -초보농부의 고군 분투기》에서 베어낸 참나무에 버섯을 키워 보겠다고 이웃에게 말하니, 듣고 계시던 마을의 어르신들이 “만 원어치 사 먹어”라고 했다는 글이 순간 떠오르며 “에휴~~~서리태, 사 먹고 말걸······.” 했다. 콩밭에 고추밭처럼 지지대가 박혀있다. 적어도 얼치기 농부인 나에게 저절로 자라나는 작물은 없다.

10월 10일에 박경리 선생님이 생전에 사시던 원주 토지문학관에 갔었다. 전시실에서 생전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인터뷰는 장소는 고추밭이다. 선생님께서 고추농사를 20년째 지어 오셨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놀랐다. 선생님은 고추와 고추 사이 고랑에 앉으신 채 몸을 옮기시면서 인터뷰어의 질문에 대답을 하신다. 빨간 고추와 흠뻑 젖은 머리카락, 얼굴에 물처럼 흐르는 땀이 프레이밍 된 순간에 나의 눈이 멈췄다. 귀도 잠시 멈춰 영상 속의 말들이 더 이상 들려 오지 않았다. 전시실을 나오면서 구석에 있어 지나치기 쉬운(같이 간 일행들이 보지 못했다고 하니) 시 한 편을 읽었다.

아침/ 박경리

고추밭에 물 주고

배추밭에 물 주고

떨어진 살구 몇 알

치마폭에 주워 담아

부엌으로 들어간다

닭 모이 주고 물 갈아주고

개밥 주고 물 부어주고

고양이들 밥 말아주고

연못에 까놓은 붕어 새끼

한참 들여다본다

아차!

호박넝쿨 오이넝쿨

시들었던데

급히 호스 들고 달려간다

내 떠난 연못가에

목욕하는 작은 새 한 마리

커피 한 잔 마시고

벽에 기대어 조간 보는데

조싹조싹 잠이 온다

아아 내 조반은 누가 하지?

해는 중천에 떴고

달콤한 잠이 온다

- 시집 《슬픔도 기쁨도 왜 이리 찬란한가》에서

“풀을 뽑고 씨앗을 뿌릴 때 살아 있는 것을 느낀다”, “어떤 작가는 소설가란 하느님을 닮으려는 사람이라 했다. 그러나 나는 씨앗을 닮으려는 사람이다. 씨앗이 함축하고 있는 신비는 하느님의 신비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다.

10월 28일 파주에 첫서리가 내렸다. 서리태는 서리를 몇 차례 맞고 수확한다고 해서 서리태라고 한다. 어제까지 피어 있던 꽃들과 호박잎이 한순간에 고스러졌다. 무서리, 된서리가 여러 차례 반복되던 11월의 어느 날 아침, 서리태가 꼬투리를 열어 내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신비함 앞에서는 침묵이다.(글 얼치기 농부 김상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