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통역 없이 회의에 참석하고 토론의 흐름을 쫓고 질의에 대해 답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원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혼자 다 감당해야 한다. 외국에 초대받을 때 가장 힘든 부분이다. 2005년 호주 브리즈번 '누사(Noosa) 프로젝트에 핵심 발제자(key note speaker)로 나선 이래 20년 넘게 한국의 '자연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일을 계속해 왔다. 2010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발제할 때 기억은 잊을 수 없다. 발제 중 메모하며 듣던 노숙한 예술가의 태도에 놀랐었다. 나를 초대한 기획자는 당연한 일이라며 "당신은 이미 30년을 자연미술 연구가로 살았으니 '마에스트로'인 것이다."라고 치켜줬다.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연단에 나서 이야기 하는 것은 확고한 신념과 자신감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나의 경우는 어휘력의 한계로 처음부터 자신감을 잃고 시작한다. 그러나 저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메모하며 경청하는 것은 오직 예술적 진실성밖에 없다. 그리고 그 뒤를 받쳐주는 것은 오랜 현장 체험에서 얻은 경험이다.
오늘 독일을 떠나며 저들이 붙여준 이름들을 되새겨 본다. '자연미술 마스터', '개척자', '메신저' 등 모두가 나를 보는 저들의 개념 규정이다. 보람도 있지만 힘겹기도 하다.
유목 중 한국에 쏠린 관심과 함께 10년 이상 지속된 국제적 운동의 진원지로서의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 저들의 시선이 날카롭게 가슴에 꽂힌다. 비행기가 프랑크푸르트 공항 활주로를 힘차게 솟구쳐 올랐지만 저들의 여망은 함께 탑승한 듯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미술계 전인미답의 ‘세계예술유목’이 시작된 것도 어언 10년이 훌쩍 넘었다. 미학적, 철학적 독특성과 발생국가로서 굳건한 입지를 갖고 있으므로 여건이 갖추어지면 관련되었던 주요 인사와 작가들이 한자리 모여 예술유목의 의미를 되새기고 우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대적 전시로 그 역사 정리와 함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하고 싶다.
*세계예술유목(Global Nomadic Art Project)을 약칭하여 'GNAP'라고 쓴다. 2013년 공주의 자연미술 단체 '야투'가 주창하여 세계로 나간 미술운동. 해외에선 인도를 필두로 이란, 멀리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르헨티나, 가까이는 몽고와 유럽 여러 나라 등 30여 회의 예술유목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유목의 주된 활동은 자연과 인문 환경을 두루 섭렵하고 각각의 현장에서 자연미술로 작업하며 그 결과를 다큐전 형식으로 실내에서 전시하며 결과 도록은 야투가 발행한다.
2014년 이후 야투가 발행한 예술유목 책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