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원 시인(우리시 편집위원)
나는 지구를 향기롭고 아름답게 하려고, 열매를 맺어 생명을 줄곧 이어가려고, 식물이 안간힘으로 밀어올린 최고봉을 꽃이라고 말한다. 또, 최상과 절정을 꽃이라고도 말한다. 아무튼, 꽃은 좋은 것이다. 잔설이 녹지 않았는데, 들길이나 논둑에 핀 봄까치꽃과 민들레와 제비꽃과 어울려 사는 냉이꽃은 얼마나 대견한가. 그 화엄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잘나고 예쁘고 못난 놈들 한데 어울려
제멋대로 살아가야 화엄세상이지
돋보이지 않아 꽃 같지 않은 것들이
쓸모가 없어 풀 같지도 않은 것들이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닌 것들이
겨울이라는 엄청난 물건을 몰아내고
뿌리내릴 땅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어
논둑 밭둑 심지어 시멘트길 어디서나
고개 들고 활짝 피어나야 봄인 것처럼
- 「냉이꽃」 부분
모질고 추운 겨울을 이기고 당당히 봄을 피우는 냉이꽃과 함께 “당신이 알거나 말거나/이런 변방 후미진 곳에 주소를 두고//당신이 보지 않는 쓸쓸한 날에도/무릎 꿇지 않고 활짝 피어나”(「민들레」 부분)는 민들레는 민초다. 민초는 군홧발로 짓밟고 곤봉으로 후려쳐도 죽지 않는다. 그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 뿐. 더욱 번성하여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튼튼한 행복을 결실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백성은 하늘이고, 하늘은 백성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뿌리박고 하늘을 쳐다보고 사는 질경이처럼.
후미진 땅바닥 한갓진 곳에서
잘나고 귀한 분들께 치고 받혀도
고개 빳빳이 주눅 들지 않고
옆으로 앞으로 당당하게 번진다
세상은 힘 있는 곳으로 바삐 달리며
빛나고 화려한 꽃들을 주목하지만
생명은 오직 맹목으로 끈질기게
씨를 보전하기 위해 살아남는 것
대소미추大小美醜를 구별하는 건
자연에서는 부질없는 짓이니
짓밟으면 짓밟히는 아픔 속에
뿌리박고 하늘만 보고 살겠노라
- 「질경이」 부분
작다고 깔보지 마라. 비웃지 마라. 그 비웃음마저 응원가로 삼아 사노라. 미약한 나 하나 땅에 엎드려 피면, 옆으로, 앞으로, 뒤로 요원의 들불처럼 번져 이 강산을 꽃과 향기로 수놓으리라. 나는 낮은 세상, 응달 울 밑에서도 빛나는 채송화다.
몸을 땅에 최대한
가깝게 붙여서
굳이 하늘 같은 건
우러러보지 않고
아래라고
내려다보지 않으며
아무 일 없어도
햇빛이 나면
작은 꽃들 모여서
가는 목을 받들고
피고 번져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울 밑이나 도랑 옆
낮은 세상을
혼자서도
환하게 비추고 있다
- 「채송화」 전문
낮은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채송화보다 더 낮은 세상을 사랑하는 제비꽃. 제비꽃이 피어 제비가 오는가? 제비가 와서 제비꽃이 피는가? 제비꽃 피고 제비가 와야, 제비가 오고 제비꽃이 피어야 모름지기 이 땅에 봄이 온다. 흰제비꽃, 노랑제비꽃, 남산제비꽃, 고깔제비꽃, 단풍제비꽃, 알록제비꽃, 왜제비꽃, 뫼제비꽃, 털제비꽃, 콩제비꽃, 선제비꽃, 미국제비꽃 등 제비꽃은 806종이 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서식하는 제비꽃은 50종이 넘는다. 이렇게 많은 제비꽃이 피는데, 어찌 봄이 오지 않고 버틸 수가 있겠는가?
손톱만 한 제비꽃이여
작은 것들이 어찌 이리도 당당하여
꽃 한 번 본 가슴마다 지을 수 없는
자주색 화인火印을 찍을 수 있는가
무수한 벌레 세상에서 일어나
두 눈 부릅뜨지 않고도 어찌
변덕쟁이 봄바람을 다스릴 수 있는가
두루두루 색상의 조화를 베풀고
허허로이 곱게 일어나는 아침
무릎 꿇고 올려보노니 제비꽃이여
고고한 당신의 기품은 어디서 오는가
- 「제비꽃」 부분
『꽃들의 수작』은 시인과 꽃들이 즐겁게 대화하는 수작秀作이다! “작은 꽃들과 같은 높이로 꿇어앉아 눈을 맞추고, 또는 키가 큰 꽃나무와 서서 주고받는 즐거운 대화를 수작이라고 표현해 보았다. 좀 더 친근해 보이지 않는가? 이렇게 친근한 자세로 꽃이 들려주는 말씀을 들으면 꽃이 곧 세계임을 알 수 있다. 꽃의 말씀이 하늘의 말씀이다. 그리하여 각각이 세계인 물물이 모여 하나의 꽃이 되고 궁극의 이 꽃은 평화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수작이란 뛰어난 작품이라거나 손동작이라는 의미도 있어 꽃을 상징하는 중의적 표현이다.”(「시인의 산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