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투어로 아르마스 광장과 산티아고 대성당 등 시내를 걸어 다녔다. 중남미 나라마다 대부분의 도시 중심에 아르마스 광장이 있다. 아르마스 광장이란 그 도시의 역사적 정체성과 시민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장소로,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공간이다. 쿠바에서도 있었고, 쿠스코에도 있었다. 산티아고의 아르마스 광장 역시 역사적인 건축물과 박물관을 배경으로 도시의 역사, 정치, 문화, 시민 생활이 집약된 중심 공간이었다. 나는 여행 오기 전 유럽 건축물의 매력에 빠져 어반 스케치를 배우기 시작했다. 여행에서 고풍스러우면서 멋진 건축물들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어서였다. 산티아고의 아르마스 광장에도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즐비해 있어서 핸드폰으로 찍어서 저장했다.
저녁은 한국 청년 셋이서 한다는 국시집에서 국수를 먹기로 했다. 지구의 반대편에 와서 한국음식점을 운영하는 용기 있는 청년들을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에 우버 택시를 불렀다. 도로의 교통체증으로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거의 다 도착했을 것 같은데 하며 그냥 내려서 걸어가기로 했다. 내려서 큰길을 빠져나와 골목을 돌아서니 가게가 나왔다. 교통체증은 산티아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청년을 상상하며 가게에 도착하니 현지인 아가씨가 서빙을 하고 있었다. 국수와 만두 그리고 치킨을 시켰다. 사실 이곳에 오면서 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왔는데.. 김치가 없어서 아가씨에게 김치를 달라고 했더니 너무 익어서 시어 꼬부라진 김치를 준다. 그래도 김치를 만나니 반가웠다.
국수는 닭 육수에 숙주와 시금치 같은 채소를 넣었고. 면은 칼국수보다 가는 국수였다. 건강한 한국 맛이라고 툴툴거리며 먹었다. 응원해주고 싶은 한국 청년들은 식사가 끝날 때까지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가게에서 나와 숙소 가까이에 있는 쇼핑센터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오전 시내 투어 때 본, 서울의 롯데타워를 벤치마킹해서 지었다는 쇼핑센터였다. 오전에 들렀을 때 파타고니아 매장을 봐두었었다. 오래전에 옷 등판에 산이 그려지고 알파벳으로 파타고니아라고 적힌 티를 입은 청년을 한없이 따라가다 돌아온 적이 있을 만큼 나는 파타고니아를 좋아했다. 거친 바람과 그 바람을 견뎌내는 황량한 풍경을 상상하며 오고 싶어 하던 곳이다. 매장으로 들어가 함께 오지 못한 막내딸과 아들 선물을 사고 나도 피츠로이산을 상징적으로 그려놓은 파타고니아 티를 사고 싶어 작은 사이즈를 골랐지만 내 사이즈는 없었다.
대신 왼쪽 가슴 호주머니에 피츠로이산이 그려진 후드가 달린 연보라색 재킷을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사실 여행을 다닐 때 무엇을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다니다 마음에 들거나 사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무조건 사야 한다. 그곳에서 안 사고 다음에 사야지 하면 못 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쇼핑을 마치고 얼음을 좋아하는 딸이 별다방이 보인다며 얼음 커피를 먹을 수 있겠다며 뛰어갔는데 마감시간이 다되어서 안 된다는 것이다. 아직도 마감시간이 20여분이나 남았는데.... 숙소로 돌아와서 호텔 식당에서 얼음이 가득 들어있는 아이스 커피를 상상하며 주문했는데 과잉 친절인지 소통 부재인지 얼음과 커피를 부드럽게 갈아 주었다. 이게 아닌데 하며 얼음을 다시 달라고 해서 커피 석 잔과 얼음 두 잔을 들고 룸으로 돌아왔다.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것이 외국에서의 소통이다.
* 김양숙, 1990년『문학과 의식』시 등단, 2025년 탄리문학상 수상, 202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활동비 수혜, 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상, 2013년 부천문화예술발전기금수혜. 2009년 [한국시인상] 수상, 시집 『종이 사막』,『지금은 뼈를 세는 중이다』,『기둥서방 길들이기』,『흉터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고래, 겹의 사생활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