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 유홍준 선생이 쓴《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한 귀절이 귀촌하면서 다시 내게 와 닿았다. 아는 것은 거의 없고 모르는 것 투성이로 산 귀촌 1년은 시골 백수였다. 아는 게 없으니 보이는 것도 없는 나는 사실 백치 수준이었다. 처음 1년은 여전히 도시인의 패턴으로 시골에 몸만 부린 듯했다. 시골 살이 계획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마을을 이루는 과정에서 계획대로 잘되지는 않았다. 귀촌 3년 차가 되어서야 ‘시골 백수 건달’에서 ‘선무당’을 거쳐 ‘얼치기 농부’라고 스스로를 승격해서 부른다. 이웃들의 바지런함, 흙과 함께하는 시간의 진심, 수확과 갈무리까지 보고 배웠다. 나를 얼치기 농부로 키운 것은 팔 할이 내 이웃이다. 요즘 나는 그들에게 배운 갈무리를 하느라 바쁘다.
건너편 집 이웃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올봄에 80대 아저씨는 두 무릎 관절 수술을 받으시고 농사는 쉬어 갈 듯하셨는데, 심어 놓은 들깨가 풍작이더니 어느새 타작까지 마쳤다. 밭에는 빈 들깨단이 수북수북했는데 어느 날 보니 쌓여 있던 빈 단들이 묶여 가지런히 세워져 있다. 언제 저렇게 갈무리를 하셨을까? 주택의 큰 창 앞에 세워 ‘파주의 혹독한 한파에 방풍 역할을 톡톡히 하겠구나’ 생각하는 한편에, 그 모습이 어찌나 단정한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작품처럼 보여 사진을 찍는다.
우리 마을의 전 쌈지대표 천호균 선생님은 ‘예술로 농사 짓고, 농사로 평화 짓자’라고 말씀하시는데 농부의 마음에는 예술의 마음 한 조각이 있다는 것일까? 아주머니의 바지런함은 빈 밭에 굴러다니는 비닐 한 조각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맞은 편에 사는 나도 밖에 나가 따라 한다. 콩을 털고 남은 콩대가 여기저기 수북수북하다. 콩대 뿌리는 잘 썩지 않는다고 하니 잘라내고, 빈깍지와 가지를 잘게 잘라 거름 더미에 섞어 둔다. 닭장 청소를 하면서 모아 둔 ‘검은 금(닭똥)’을 더해 가끔씩 물을 주고 뒤집어 준다. 닭의 창자는 짧아 소화 흡수 능력이 떨어지므로 약 70% 정도가 소화가 안 된 사료를 분변으로 배출시킨다고 한다. 그러니 잘 썩혀 사용하면 토양의 비옥도를 향상하는 것은 물론 토양 구조를 개선시키니 금에 비유할 만하다. 지나가시던 이웃이 “거름 만드는 것을 보니 농부 다 됐네~~” 하신다. 갈퀴로 쓰레기들을 긁어내고 흙을 고르게 한다. 1년 동안 애쓴 밭에 토양 미생물의 먹이로 유기물 함량과 수분 보유 능력을 향상하는 펠릿을 넣어 섞어 준다. 아무튼 이런 일들이 모두 땅이 얼기 전에 해야 할 일이므로 밖에 나가면 할 일이 점점 생겨난다. 일은 복리의 법칙이라도 작동하는 것인지 하면 할수록 많아진다.
밖에서는 한바탕씩 흙장난(?)을 하고 안에서는 늙은 호박을 갈무리한다. 툇마루에 수확한 늙은 호박을 두었는데 그 옆에 우리 집으로 밥 먹으러 오는 ‘치즈냥이’가 앉아 있어 깜짝 놀란다. 색깔이 너무 비슷해서 ‘치즈냥이’보다는 ‘호박냥이’로 부르는 것이 맞춤해 보인다. 해마다 언니에게 늙은 호박으로 만든 호박 식초를 받아 썼다. 언니는 사서 만드셨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수확한 호박으로 직접 만들어 나눔 하려고 레시피를 받았다. 샐러드 할 때, 여름철 차가운 음료로, 새콤달콤 찬을 만들 때 좋은 식초다. 식초를 양껏 만들었는데도 수확물이 남았다. 무엇을 만들까? 궁리를 한다. 호박 조청을 만들어 볼까? 이건 궁리가 아니라 도전이다.
귀촌하면서 궁리하는 일이 많아졌다. 없어서 궁리하고, 표준 규격화 된 것이 아니라서 살 수 없으니 궁리하고, 예측 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생겨서 궁리한다. ‘불확정성의 원리’가 자연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도시를 떠나 귀촌하면서 자연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궁리하라는 명령으로 내게 다가온다. ‘정의’하고 ‘측정’하며 하나의 정답과 프로그램에 익숙해져 살아온 육십여 생이 정의할 수 없고 측정할 수 없는 것 앞에서 알고 싶을수록 더 알 수 없어진 상태가 되기도 한다. 여전히 세상사에 익숙한 계산법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 나는 밖으로 나가 어슬렁 거린다. 거기는 계산할 수 없는 것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나의 머릿속 복잡함은 무력화된다. 그것이 자연의 본질적인 속성임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생태공동체 가비오타스 이야기-엘런와이즈먼, 황대권 역》이라는 책에서 촌장 파올로는 “우리에게는 프로그램이 없어요. 가비오타스는 ’불확정성의 원리’입니다”(본문 217쪽)라고 말한다. 콜롬비아의 가비오타스는 사바나(사막)로 모든 면(좌우의 대립, 내전, 코카인의 최대 생산지로 망가져가는)에서 최악이었지만 ‘최악’이 ‘가능성의 다른 이름’임을 보여 준다. 생태적 삶을 지향하고 또 생태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자연에 더 가까워진 귀촌 생활은 때로 내게 예측하지 못한 놀라움을 주어 그 불확정성의 본질을 보여 준다. 어쩜 확정되지 않았기에 확장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놀라움이 있는 것이 아닐까?(글, 얼치기 농부 김상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