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원이 지구에 등장한 것은 약 7백만 년 전 이다. 그 후 인류는 여러 단계를 거쳐 진화했으며 모든 경쟁 대상을 물리치고 일찍이 자연계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다. 인류학에서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되기까지 결정적 구실을 한 신체적 조건은 두 가지로 본다.
그 하나가 두뇌의 크기다. 현존 인류의 조상인 크로마뇽인의 두개골은 이전의 유인원보다 3~4배 크다. 그리하여 인간은 상상 이상의 동물이 되었다. 어느덧 인간의 지적 능력은 없는 것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종교, 철학, 역사, 예술 등 모든 문명과 문화는 지적 활동의 소산이다. 인류가 그것을 깨닫기 전까지 그것은 신의 영역이었다.
그다음은 엄지손가락이다. 사람과 가장 닮은 침팬지나 오랑우탄도 다섯 개의 손가락은 있지만 엄지가 유난히 짧아 물건을 거머쥘 수 없다. 우리의 엄지는 정확히 두 마디가 손으로부터 돌출되어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엄지는 네 개의 다른 손가락 끝과 마주 댈 수 있다. 즉 엄지와 집게 손가락을 동그랗게 마주하면 'OK' 신호가 된다. 지구상 어느 동물도 이처럼 작동하는 손을 갖지 못했다.
엄지로 도구를 거머쥐는 능력은 더욱 섬세한 작업을 가능하게 해주었으며 인류는 이 경이로운 능력을 극대화해 뜨개질 바느질을 통해 옷을 기워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옷을 입은 동물은 옷을 입지 않은 동물과 차원이 다르다. 동물이 진화를 계속한들 사람이 되겠는가?
나는 손을 많이 쓰는 직업군에 속한다. 특히 엄지 손가락이 없었으면 화가가 되진 못했을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엄지로 거머쥔 도구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며 더위와 시름을 잊고 마냥 행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십만 년 누려온 최상위 포식자로서의 오만은 더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의 의지와 관계 없이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게 될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최근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상이변은 자연이 인류에게 던지는 최후의 '경고'가 아닐까? 인류를 구원할 '엄지의 힘'이 다시 작동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