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치나 마을의 뒷동산에서


라스카 지상화와 오아시스 마을인 와카치나를 보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이카까지 가야한다. 남태평양을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 길을 달려야 한다. 나는 성향(性向)적으로 황량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여름의 숲보다 겨울의 민둥산을 좋아하고, 제 모습을 낱낱이 드러내며 속살을 보여주는 겨울나무를 좋아하고, 잎을 모두 떨군 겨울나무 사이의 바람 소리를 좋아한다. 사막이 주는 황량함의 매력에 빠져 차장밖으로 스치는 풍경에 눈을 두고 달렸다. 얼마를 달리다 보니 길 가장자리에 어릴 적 고향집 마당 구석에 아버지가 만들어줬던 메리(어릴 때 키우던 강아지)의 집처럼 보이는 작은 집이 보였다. 그리고 그 작은 집은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또 나타났다. 처음에는 무엇일까 궁금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스마트폰으로 한 두 컷을 찍을 수 있었다. 어떤 곳의 안쪽에는 꽃이 있었고 어떤 곳에는 십자가가 놓여 있기도 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그곳은 그 부근에서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기도하는 곳이라고 했다.

위령소


이카까지 달리는 동안 모래 산이 도로 양옆으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마을도 띄엄띄엄 보였다. 멀리 핑크빛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모래바람이었다. 리마는 모래바람과 해무가 콜라보되는 이중성의 사막 길을 가진 도시였다. 마을을 지날 때 건널목에 버스가 잠시 멈추면 아줌마들이 바구니에 옥수수와 군것질거리를 담고 와서 파는 모습을 보며 삶은 생존이며 자본주의는 어디에서나 비슷한 형태로 나타나는구나 생각하며 서울에서 주말에 외곽으로 나가다 길이 막히면 사 먹던 옥수수와 옥수수 빵이 생각이 났다. 띄엄띄엄 소환되는 추억은 여행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와카치나로 가는 도증 1945년 노벨상을 수상한 칠레의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이 어린 시절 ‘달빛을 머금은 에메랄드’라고 표현했던 포도밭에 들려 ‘안데스산맥의 영혼을 담은 물방울’이라고 묘사한 칠레의 전통주인 피코크 만드는 농장에서 점심을 먹고 칠레의 전통주인 피코크를 시음을 하는데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졌다. 사막에서 비를 만나다니 하는 반가운 마음보다 와카치나에서 선셋을 봐야 하는데 하는 걱정이 앞섰다.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자기중심적 동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카 도심에 들어서자 비닐봉지를 입에 문 바람이 도로 곳곳을 굴러다니는 것이 보였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비닐봉지가 안데스산맥까지 침투하여 미관을 해치고 있는 안타까운 광경이었다. 숙소에 집을 풀고 필요한 물품들을 사러 마트로 가는데 오래전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티코가 이카 도심을 누비고 있었다. 낯선 곳에서의 낯익은 티코라니...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와카치나의 모래 언덕에 올라 저무는 노을과 억만 연전부터 그대로 있었을 안데스의 속살인 모래를 만져보며 시간의 무상함을 느꼈다.

사막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