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진주고등학교 교사)
화씨 100도에 육박하는 더위가 며칠 째 계속되고 있다. 체온을 넘길 때도 있으니 살인적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극도로 더워지거나 추워지면 사람들은 매우 단순해진다. 조금만 시원하거나 따뜻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하여 날씨가 극한으로 갈수록 사람들은 몹시 조급해지고 동시에 말초적이 된다. 이를테면 지금까지 잘 감춰 놓았던 동물로서의 인간이 가지는 본성이 쉽게 나타난다.
그러고 보니 날씨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참 크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에서도 인간 삶에 중요한 요인으로 기후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아 인간에게 날씨는 삶의 태도와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노자'나 '장자'의 세계에서는 '기후'니 '인심'이니 하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장자'에 간혹 세상 인심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나 주요한 주제로 다룬 적은 없다. 道의 세계에서는 날씨나 사람의 마음은 오히려 깃털처럼 가벼운 것들로 생각한 것이다.
도덕경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것은 자연의 도와 치국의 도, 그리고 지도자의 도에 관한 이야기지만 가끔은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마치 '정언명령(Kategorischer Imperativ)' 같은 이야기는 가끔 있다. 칸트의 정언명령, 이를테면 “Handle so, dass du die Menschheit sowohl in deiner Person, als in der Person eines jeden anderen jederzeit zugleich als Zweck, niemals bloss als Mittel brauchst.”(“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을 언제나 동시에 인격으로 대우하고, 단순한 수단으로 대우하지 말라.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제2절, Akademie-Ausgabe IV: 429, 2002)식의 이야기가 도덕경 16장 초입에 있다.
致虛極 守靜篤.(치허극 수정독). 철저히 비워 고요함을 지켜라. (도덕경 제16장 부분)
해석의 방법은 백서본과 왕필본의 차이가 있다. 백서본은 위와 같고 왕필본은 “致虛를 極하고, 守靜을 篤하라”, 즉 “비움에 이르기를 지극히 하고, 고요함 지키기를 돈독히 하라.”인데 거시적으로는 의미의 차이가 별로 없다. 단지 무엇에 중점을 두는 가이다.
날씨가 극단으로 가면 철저히 비워내기가 어렵다. 동물인 인간이 가진 한계다. 선승들이나 도사들의 경지가 되어야 가능하다. 어쩌면 그 양반들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물며 고요함을 지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어느 정도의 날씨에는 고요함이 가능하지만 극한의 날씨 앞에서 인간은 역설적으로 매우 혼란스럽고 어지러워진다. 극한의 여름을 넘기며 노자와 칸트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