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신일중학교 진로진학교사)
학창 시절 수학을 무서워했다. 공포의 시작은 중2 수학 시험. 한창 문제를 풀고 있는데 감독 선생님이 5분 정도 남았으니 정리하라고 하신 말에 너무 놀라고 긴장한 나머지 손을 떨며 마무리한 기억이 난다. 평소와 달리 아직 못 푼 문제가 많아서였다. 문제 푸는 속도가 느려졌다는 것은 문제를 보며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뜻이고 이제 더 이상 수학이 그전과 같이 만만한 과목이 아니라는 뜻이다. 중학교에 올라와서 초등학교와 가장 달라진 점은 영어를 배우는 것과 수학 시간에 나의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 일이다. 1학년 당시 우리 반엔 남녀학생들이 60여 명 있었다. 대충 얼마나 오래된 얘기인지 짐작하실 거다. 하나 덧붙이면 당시 우리를 가르친 수학 선생님은 무려 동경대학교 수학과를 나오신 막 정년퇴임을 앞둔 분이었다. 이제 나는 그 어려운 수학을 극복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37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케빈은 열두 살(원제 The Wonder Years)’이란 미국 드라마가 있었다. 너무 재밌어서 당시에 매주 빼먹지 않고 시청했다. 그 드라마에서 주인공 아놀드는 카리스마 넘치고 왠지 고독해 보이는 늙은 수학 선생님을 동경한다. 그러나 조금 노력해서 얻은 B⁺ 답안지에 만족해하는 순간 유대인 절친 폴의 A⁺ 답안지를 보고 놀라고 거기에 선생님이 써준 ‘good job!’이란 친필에 더욱 실망하고 부러워한다. 아놀드는 용기를 내서 선생님을 찾아간다. 수학을 잘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에 선생님은 방과후 교실(그 당시는 보충수업)을 제안한다. 다음날 방과후 교실을 찾은 아놀드는 그 속에서 소위 열등해 보이는 친구들이 앉아있는 걸 보곤 지레 겁을 먹고 들어가지 못한 채 포기해 버린다. 그리고 계속되는 좌절 속에 자신은 수학에서 실패했다고 고백하게 되고 선생님은 이제 모든 게 시작할 시점이 되었다며 특별 개인지도를 제안, 둘은 함께 열심히 정기 고사를 준비하게 된다.
순조로운 둘만의 수업이 진행되는 나날들. 그러나 선생님이 결정적인 마무리 수업을 회피하는 모습에 영문을 모르고 실망한 주인공은 결국 수학 시험에서 일부러 이상한 답을 쓰고 태업을 함으로써 선생님을 골탕 먹이려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들려온 선생님의 부고.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며칠이 지나고 교감 선생님은 이상하게 돌아가신 수학 선생님이 성적처리를 하지 않으시고 아놀드를 위한 시험지를 하나 더 남기셨다는 말을 전한다. 교감 선생님이 감독하며 혼자 본 특별한 시험. 종료령이 울리고 주인공 아놀드는 이제야 선생님이 자신에게 남긴 것은 단순한 수학 문제 풀이 방법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하는 자세와 열정이었음을 깨닫는다. ‘채점하실 필요 없어요, A일 거예요.’라는 말을 교감 선생님께 남기며 돌아서는 순간 들려오는 수학 선생님의 환청 ‘Good job, 미스터 아놀드!’ 돌아가신 선생님의 영정 사진이 나오며 들려온 Karla Bonoff의 ‘Good bye my friend’는 너무도 감동적이고 슬픈 곡이었다.
나에게도 중학교 1학년은 비슷한 시기였다. 동경대를 나온 우리 수학 선생님은 그 영롱한 새싹들에게 진도 중간중간 심화 문제를 던지셨다. 답변을 하려고 제일 먼저 손을 든 건 지금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가르치고 있는 친구, 그다음은 전자공학 기술자가 된 친구, 그다음은 명문 대학에 간 친구. 내 차례는 한참 뒤였다. 드라마 주인공처럼 당시 나에게도 수학 시간은 큰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수업을 다 마치고 당시 선생님이 일과 후 사군자를 그리며 쉬고 계시던 상담실에 찾아갔다. ‘선생님, 초등학교 때까지는 이런 고민이 없었는데 중학교에 와서 제가 수학을 잘 못 하는 것 같아 너무 걱정됩니다.’로 말을 열며 고개 숙인 중학교 1학년 학생에게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해법을 제시하셨다. ‘수학을 잘하려고 너무 수학 문제만 보지 말거라. 소설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보면서 여러 경험을 쌓아가는 게 좋겠구나. 그런 다음 편안히 수학 공부를 하렴.’
의외로 선생님이 주신 해법엔 수학이 없었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수학을 잘하는 방법이 수학 밖에 있을 수도 있겠구나. 결국 생각의 폭이 자라지 않으면, 사고의 유연함이 길러지지 않으면 수학이 아니라 어떤 공부도 쉽지 않겠구나. 그래서 삶을 살아가며 배우는 모든 것이 공부가 될 수 있겠구나. 뭐 대충 이런 느낌을 받아서였던 것 같다.
지금도 수학 공부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아이들과 상담하며 나의 일화를 얘기해준다. 한 발짝 떨어져서 여유를 가질 것. 당시 내가 스트레스를 느꼈던 친구는 훗날 물리학 박사로 나름 인정받고 있는 교수이기에 사실 나의 경쟁상대로 여길만한 대상은 아니었다는 것.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공부를 하지 말 것. 어려운 수학 문제를 빨리 풀어야 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면 분명히 잘할 수 있는 다른 능력이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용기를 낼 것 등과 같은 응원들이다. 아마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을 나의 수학 선생님이 전해준 가르침들이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아직도 녹음이 짙은 한가로운 오후 중학교 상담실에서 한 학생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해 주시던 수학 선생님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수학으로 고민하는 모든 아이에게 선생님의 가르침이 힘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