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후(전 정의당 의원)

1. 당장 이름을 바꿔라. 때로는 정책명이 그 정책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그동안 나온 내용을 보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초격차 대학(참 아리송한 표현이고 목표지만) 육성’이다. 즉 서울대를 포함, 10개 내외의 세계 수준 연구 중심 거점대학을 만들어 서울대 하나로 쏠리는 현상을 분산하여 ‘대학 서열화를 완화’하고 이를 통해 ‘지역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더욱 ‘서울대 만들기’ 명칭은 어울리지 않는다. 학벌 욕망에 편승하여 그 욕망을 부체질하는 이름이다. “차라리 서울대 100개 만들기는 어떠냐”는 지적을 그냥 하는 비아냥으로 흘려듣지 말기 바란다. 간간이 회자되는 ‘서울대 없애기’와는 본질이 다르다.

2. 목표를 분명히 하라. 이 정책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문제점인 경쟁력을 완화하기 위한 것인지, 지역 간 불균형을 시정하여 지역의 균등한 발전을 꾀하고자 하는 것이지 분명해야 한다. 하나의 정책으로 이것도 잡고 저것도 잡는 방식은 이도 저도 아닌 실패로 끝나기 십상이다. 하나의 분명한 목표를 통해 부수적인 효과를 거둘 수는 있어도, 처음부터 목표를 분산 제시하는 것은 정책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다.

3. 정책의 실효성이 입증되거나 인정될 수 있어야 한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거점 국립대별로 소수의 선도학과를 지정하여 2~3년 간 지원하고 다른 대학을 추가 지정하여 경쟁을 유도한 뒤, 이 둘을 아울러 ‘초격차학과’를 추가 선정한다는 것이 이 정책의 얼개다. 여기서 먼저 드는 의문은 이렇게 거점 국립대(초격차대학?) 하나에 10개 내외의 ‘초학과’를 육성하는 것만으로 해당 대학이 곧 서울대학교에 버금가는 대학이 될 수 있는가에 있다. 뿐만 아니라 5년 간 1백 억씩을 ‘초격차학과’에 투입하는 것으로 해당 학과가 세계적 연구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지, 그래서 5년 후 ‘9개의 서울대학교’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도 설득력이 없다. 거기에, 그 5년 간 세계 100위권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현재의 서울대학교는 잠이나 자고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격차는 여전한 것을 넘어 심화되는 것 아닌가.

4. 교육 예산은 고무줄이 아니다. 제시된 내용으로 사립 대학에 대한 지원은 별도 프로그램을 통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야 서로 간의 간섭 효과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정책 제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립대학 비율은 전체의 86.5%에 이른다. 사립대학 중심의 고등교육 체제에서 사립대학에 대한 국가지원은 자칫 방기될 수 있다. 혹자는 사립대학을 왜 국가가 지원하느냐고 할 수도 있다. 법률적 이치만 따지자면 국립대학인 서울대학교도 법인화를 했다. 법적으로는 사립에 해당한다. 그에 따른 논란을 피하고자 법안 명칭에 ‘국립 서울대학교 법인...’으로 하고 있으며, 법인화 이후에도 내 부실한 기억으로도 매년 3천 억원 이상의 재정이 지원되고 있다. 교육 예산을 대폭 늘린다 하더라도 다른 부분에 대한 침해 정도가 걱정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방의 사립대학은 지역의 인구 감소와 더불어 ‘소멸’의 길로 가고 있다.

5. 이 정책에 대한 논의 자체가 빈약하다. 연구자 중심의 아이디어가 국가 정책으로, 그것도 교육정책으로 자리하기까지는 최소한의 논의가 있어야 한다. 지극히 제한된 단위에서 정치적 선택으로 이루어진 정책의 성패는 곧 밀어붙이기로 나타나 다른 여건까지를 혼란에 빠뜨리기 쉽다. 특히 민감한 교육문제에서는 더 그렇다. 시도교육감들과 논의가 있었다지만 지극히 형식적인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로부터 어떤 문제점이 검토되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더욱이 성패의 중요 요소인 거점 국립대와 지역의 대학(국립, 사립) 간 동반 성장 협력 체제에 대한 필요성 등의 검토 내용이 존재하는지 조차 알 수 없다. 한 마디로 의미만 크게 부여하고 있지 제반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6. 마지막으로 사업 추진 방식에 대한 우려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제안 당사자가 사업을 추진하는 당사자라면 더욱 그렇다. 여러 의견을 듣고 정책 설계에 참조하여 사업을 추진하기보다 ‘이 문제는 내가 제일 잘 안다’는 미망에 사로잡혀 질주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교육부는 자신들이 정한 획일화되고 임의적인 기준에 따라 대상을 줄 세우기 한다는 비판에 익숙하다. 기존의 ‘BK21 대학’ 선정이 그 예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만한 사업 추진 방식이 이 정부의 사업 집행에서 먼저 검토되어야 정책에 대한 신뢰가 가능할 것이다.

7. 첨언...이 정책이 경쟁완화를 통한 교육정상화를 궁극의 목표 중 하나로 한다면, 단순한 대학 서열화 타파에만 초점을 맞출 것아 아니라 초중등 교육과의 정책 연관성에도 십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순하게 입시 제도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우리 교육의 발전 전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정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고등교육과 초·중등 교육의 연관 문제는 전혀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더 구체적으로 지역의 대학과 초·중등 학교가 연관된 정책을 더불어 고민하고 눈에 보이는 정책으로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때문에 나는 고등교육 중심의 교육정책이 늘 실패한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초·중등교육은 고등교육의 종속변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