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섭

소리도 없이 내리는 눈이

사철나무 가지를

뚝 뚝 부러뜨리고 있다

눈은 내리는데

눈은 쌓여만 가는데

지금 저 먼데서

내가 아는 한 사람이 몹시 아프고

그 사람은 지금

내가 설원을 건너

푸른 심줄이 돋아나는 그의 이마를 짚어주길

간절히 바라고

하지만 나는 지금

창 너머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그냥 바라만 보고 섰는 것이다

눈은 나리는데

눈은 쌓여만 가는데

어디선가 사철나무 가지는

뚝 뚝 부러지고

- 『강릉, 프라하, 함흥』(문학동네,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