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우 작 _나는 이렇게 살고 싶었다._ 2024

이응우 작 _휴식_ 2025


유럽에서 돌아온 후 10월이 다 가도록 몸이 무겁다가 찬 바람이 불 무렵 회복되었다. 최근 나무를 다루기 시작하니 또 밤마다 손가락이 저리다. 톱으로 자르고 끌로 다듬고 사포로 문지르다 보면 짧은 해가 저만큼 늘어지고 그림자는 늘 벽에 걸려 있곤 했다.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지붕에 내린 서리가 더욱 두꺼워졌다.

손가락 통증 때문에 며칠 수작을 멈추고 있는데 딸기밭에서 오라는 기별이 왔다. 친동생처럼 지내는 백수 후배가 농사짓는 딸기밭은 겨울의 초입부터 성수기다. 강경과 연무대 접경에 있는 현장은 김제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제일의 곡창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채운의 들은 아침 햇살이 먼 산 위에서 수평으로 들판을 비추는 광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나의 일과는 선별 작업, 딸기를 대, 중, 소로 구분해 포장을 담당한 사람에게 넘기는 일이다. 젊고 골격이 든든해 보이는 몽골 아주머니의 손놀림이 능숙했다. 때맞춰 작업이 끝나 비닐하우스로 배달된 점심을 먹고 채운초등학교 옆 마장에서 승마에 여념이 없는 옛 동료를 만나 말 구경을 하고 차 한 잔을 마시며 말의 습성과 승마에 관한 체험과 퇴직 후 보람이 있는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윤기가 가신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배었으나 자존감은 오히려 부풀어 있었다.

다시 차를 몰아 장항에 도착한 것은 희뿌연 하늘과 산이 맞닿은 곳으로 해가 지는 석양 무렵이었다. 햇살 꼬리만 남은 하늘에는 V자 대형으로 날아가는 철새들이 대형을 유지하려는 듯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허공에 던지며 해를 등진 채 날아가고 있었다. 장항선이 마지막 멈춘 곳, 여기는 바다로 나아가야 할 자리다. 그러나 제련소 굴뚝만 우뚝 서 있을 뿐 읍내 거리는 한산했다. 다시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듯 잘 정비된 옛날 장항역 주변이 오히려 쓸쓸함을 더해준다.

구 장항선 야경


달포 전 지인의 전시를 보러 왔었는데 그때 보았던 전시장 인상이 아직 남아 있다. 조선의 들판에서 자란 곡식 중 일부가 배를 타고 일본으로 끌려가기 전 그곳에 머물렀을 것을 생각하며 속이 상했다. 제국주의 침탈을 상징하는 쌀 창고! 아픈 역사의 흔적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졌다. 하지만 오늘은 판소리 공연을 보러 왔다. 박성환 명창의 포스터가 내걸린 현대식으로 잘 지은 '기벌포 복합문화 센터'에 차를 두고 저녁 먹을 곳을 찾았다. 항구에 온 김에 근처 '서해안 식당'으로 갔다. 차림표에 있는 음식은 대부분 '2인 이상 주문'이어서 선택의 여지 없이 백반을 주문했다. 밥 한 그릇에 콩나물국 갈치조림과 6가지 반찬이 정갈한 식사였다. 반찬이 남아 밥이 몇 숟가락 아쉬웠는데 주인이 한 공기를 더 주는 바람에 두 공기를 뚝딱 먹었다. 반찬과 밥을 모두 비운 것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맛과 포만감이었다. 식당 안을 둘러보니 단체복처럼 똑같은 복장을 한 현장의 인부들이 많았다. 고된 노동 후 식사는 또 얼마나 맛이 있을까? 밥 한 공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깨끗이 비운 백반 한 상


그날 '박성환 & 예인스토리 국악 콘서트'는 '중고제'가 충청도 판소리인 것과 일제 강점기 이동백과 김창룡'이라는 두 걸출한 소리꾼이 서천 사람이었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박 명창은 계룡산 허리에 소리청을 마련하고 그 맥을 잇고자 고군분투 중이다. 그의 꿈이 이루어져 한류의 중심에 우뚝 서는 날을 기원한다. 공연장에서 만난 서천문화재단 문옥배 대표, 김인규 화백, 향토 사학자 유승광 박사는 서천의 인물들이다.

기벌포 복합문화 센터, 박성환명창의 _적벽가_ 공연 2025

기벌포 종합 문화센터, 예인스토리 공연 장면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