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흙에게서 청갓을! 이웃에게 무씨를 얻을 때 같이 받은 씨다. 무씨를 정성껏 심고 가장자리에 청갓 씨도 주르르 심었다. 김장할 때 사용하면 되겠거니 했는데 아뿔싸! 얼치기는 파종 시기를 맞추지 못한 것이다. 이것저것 찾아보니 무보다 생육기간이 짧아 20일 정도 늦게 파종했어야 했다. 김장 시기는 한참 남았는데 청갓은 키도 크고 잎도 넓어져 억세지기 직전이다. ‘이를 어쩌지?’ 더 억세지기 전에 계획에도 없던 갓김치를 담그기로 했다. 키가 크고 잎이 넓어진 것들을 솎아내는데 청갓 잎에는 달팽이들이 참 많이도 붙어 있다. 달팽이 천국이다. 바로 옆이 무밭인데 달팽이들이 청갓 잎을 더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요놈들이 무잎보다 갓잎의 매력적인 향을 탐하는 것일까? 보이는 대로 달팽이들을 떼어 내면서 ‘나도 좀 먹자’ 말하고 가급적이면 밭에서 먼 곳으로 보냈다.

기어서 다시 올 때쯤이면 아마 나머지 청갓은 김장 배추와 버무려졌을 것이다. 솎아낸 것이 큰 소쿠리로 하나 가득이다. 소쿠리를 옆구리에 끼고 들어 오는데 기분이 좋았다. 거저 받은 느낌이다. 사람 누구나에게 농부의 마음 한 조각이 있다는데 그 마음이 이런 것일까? 물에 씻는데 미처 떼어 내지 못한 달팽이 몇 마리가 물 위에 둥둥 뜬다. 비록 잎은 달팽이가 먹어 구멍이 많았지만 싱싱한 채소의 살아있는 몸을 만지는 감촉과 매콤한 갓의 향에 기분은 더 좋아진다.

청갓


자, 이제 한 번도 담가보지 않은 갓김치에 도전해 보기로 한다. 소금을 뿌려 둔 후 작년에 조금 심어서 수확해 둔 마늘을 까고 쪽파를 한 웅큼 캐서 쪽파밭 옆에서 다듬는다. 귀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저녁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오던 중이었다. 대문이 활짝 열린 집의 마당에 계신 분과 눈이 마주쳐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 이웃의 손에는 파 몇 뿌리가 들려 있었다. 파밭 옆에서 다듬고 있는 중이셨다. 저녁 무렵이었으니 아마 저녁 찬을 준비하면서 필요한 파를 밭에서 바로 뽑고 다듬는 중이셨을 테다. 나는 늘 슈퍼에서 사고 다듬어서 종이에 말아 냉장고에 넣어 두고 썼다. 너무 많으면 썰어서 냉동실에 넣기도 했다. 그나마 다 먹지 못해 상한 것을 버린 경험이 다수 있는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제 나도 밭에 가서 필요한 만큼 얻고 거기서 다듬는 생활에 들어섰다. 신선한 것을 얻고 버리는 것도 없다.

엊저녁에 청갓김치 담그는 유투브 몇 개를 보았다. 때마침 과일이 풍성한 계절이라 냉장고에 있는 배도 하나 갈아서 양념에 보탠다. 버무리면서 먹어보니 갓에 있는 톡 쏘는 겨자향의 풍미가 적당하다. 잘 버무려 김치통에 담았다. 갓김치를 담그느라 앞치마는 흠뻑 젖었고 종일 분주했지만 나는 뜻밖의 선물, 갓김치 한 통을 선물 받은 마음이 들었다. 흙에게서, 청갓에게서 신묘한 섭리를 배운 감사한 하루다.(글 김상란)

청갓 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