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슈타트의 '숲미술센터'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센터의 초입에 배치된 긴 의자다. 이 의자들은 등받이가 사람처럼 생겨 마치 칠레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을 연상케 한다. 18세기 네덜란드의 한 탐험가에 의해 부활절 날에 발견되어 붙은 이름의, 섬에 어울리지 않게 거대한 형상의 석상이 즐비하다. 이 석상들은 4세기 경 이 섬으로 건너왔다고 추정되는 폴리네시아인에 의해 각 부족의 수호신으로 조성된 것이다. 석상은 부족의 상징으로 경쟁적으로 커졌으며 부족 간 전쟁을 통해 파괴되기도 했다. 화산섬 그리고 현무암으로 조성된 석상은 제주도의 돌하르방을 연상케 하지만 실제 규모로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거대하다.
아무튼 세월은 흘러도 변함 없이 자리를 지키는 벤치는 마치 센터의 상징과 같다. 처음엔 숲속에 설치되었으나 원형이 붕괴되자 의자 부분만 옮겨 재설치 한 것이다. 오가는 사람이 없는 휴일 미술센터의 정원에 남아 사람들을 맞이하듯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사람의 형상을 한 등받이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작품의 형상성은 이미지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처음 설치될 때 작가의 의도와 관련 없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지만, 그 생긴 모양에 따라 새로운 느낌이 든다. 미술 작품 속의 형상은 색, 공간과 함께 작품을 구성하는 요체다.
벤치의 구조나 형식으로 미루어 아프리카 아이보리코스트의 대표 작가 제임스 코코비(James Kokobi)의 작품이 틀림없다. 나는 그와 세 번 만났는데 두 번은 숲미술프로젝트로 이곳 다름슈타트와 중국 쓰촨성 두장언에서였다. 그리고 한 번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였다.
코트디부아르의 작가 제임스 코코비(James Kokobi)
그는 독일과 코트디부아르를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하는데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의 유명 전시 참여는 물론 광범위한 컬렉션을 갖고 있으며 코트디부아르의 경제 수도 아비장에 그린 아트 센터(Green Art Center)를 갖고 있다. 그의 작업은 체인톱으로 굵직한 흐름을 잡아내는 것으로 마무리하는데 그 단순함과 원초적 형태의 기상과 에너지가 압권이었다.
이 벤치의 재료는 유럽인이 가장 선호하는 목재인 오크다. 10년이 넘는 세월 밖에 두었으나 색깔만 거무스름하고 부분적으로 바위옷이나 이끼가 좀 끼었을 뿐이다. 오늘 다름슈타트의 외관을 함께 돌아보기로 약속된 사람을 기다리며 벤치에 앉아 모아이 석상이 바다를 바라보듯 남쪽을 향해 일제히 허리를 약간 뒤로 젖히고 있는 등받이의 모습이 매우 정겹다.
제임스는 자신의 나라에 있겠지만, 그의 작품과 함께 있으니 그의 시그니처 같은 외줄로 따내린 턱수염과 체인톱을 다루던 모습이 떠올랐다. 중세의 무사들이 철갑옷으로 무장하듯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아름드리나무를 망설임 없이 다루는 그의 모습에서 장인의 아우라가 느껴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