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남편은 술래잡기를 한다. 술래는 호박이다. “어제까지 분명히 보지 못했는데” 말하며 손에는 호박이 잡혀있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시월 초인데 아침마다 호박꽃이 활짝 핀다. 여섯 장의 꽃잎이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자글자글 주름진 꽃잎, 그마저 봉오리를 오므린 모습만 보다가 새벽 단장 다림질이라도 했는가? 혹여 만지면 찢어질 듯 당겨진 여섯 장의 꽃잎 속에 벌까지 품고 있는 모습에 나는 탄성을 내질렀다. 한 번밖에 보질 못했다. 호박꽃이 나에게 준 찰나의 선물이었다. 호박은 언제까지 열리는 것일까? 이파리가 고스러질 때 생명을 다한 것일 텐데 우리 집 호박은 아직도 잎이 무성하다. 술래잡기한 남편의 손에 호박잎도 한 줌이다. 도톰하고 싱싱한 잎을 쪄서 점심 찬으로 낸다. 단맛이 뭉근하게 배어들기를 기다리는 늙은 호박이 닭장 지붕 위에 서넛 되고 닭장 옆 귀룽나무 가지에 덩굴손을 뻗어 허공에 둥둥 떠서 늙어가는 호박(참고로 이 호박은 어느 날 저녁 무렵에 가을 하늘을 보던 내가 찾음)이 둘이다. 새파란 호박들이 날마다 열리고 남편의 술래잡기는 계속되고 있다.
호박을 심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물론 먹기 위해서이고 다른 이유는 닭을 위해서였다. ‘겨울 추위에 얼어 죽지는 않아도 여름 더위에 쪄죽는다.’는 닭을 위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닭장 옆에 큰 나무가 있지만 불폭탄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흙바닥 위에서 넓은 잎을 펼치며 자라는 호박잎을 닭장 지붕으로 올리려고 닭장 주변에 심었다. 호박은 거침이 없이 펜스를 타올랐고 지붕을 가득 덮었다. 잎들은 닭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열매는 식탁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이웃과 나눔도 하고 닭들에게도 먹인다. 황대권 님의 ‘야생초 편지’에 ‘오이나 호박 덩굴의 생장점 부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조물주의 창조력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는 글이 나온다. 나도 그의 말에 백 퍼센트 동감한다. 그 작은 덩어리 같은 곳에 무엇이 들었기에 마법을 펼치는 것일까? 생장점을 들여다보지만 본다고 알 수 없는 신비함에 그저 나는 말을 잃을 뿐이다. 덩굴손도 곤충의 더듬이처럼 정확하게 손을 뻗어 잡고 자기 몸무게보다 훨씬 무거운 호박을 너끈히 매달고 있다. 그의 책 야생초 편지(91쪽)에는 덩굴손을 가지고 감옥 안에서 혼자 실험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서 ‘식물은 동물 이상으로 능동적으로 자기 삶의 조건들을 만들어 내고 또 삶의 진로를 개척해 나간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인다. 더욱 ‘자신이 특수한 영적 능력이 있다면 식물이 지능과 감정을 가진 생물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을 텐데’ 하면서 아쉬워하기까지 한다. 나는 그저 그 신비함에 감탄하고 그친다.
해마다 늙은 호박으로 식초를 만들어 쓰고 있는데 올해는 호박을 말려야겠다. 지난봄, 어느 식당에서 먹은 호박고지 맛을 잊을 수 없다. 가을에 채소를 말리는 일은 ‘한로寒露’부터 시작하라는데 ‘한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낌없이 주는 호박이 고마운 가을 아침이다.(글 김상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