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고독의 시간이
지난 어디쯤에서, 나는
서울 중구 구석진 자락
오래된 약현성당에 닿았다

조선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란다
벽돌담벼락에 마지막 잎새의
그림처럼, 애틋한
가을담쟁이가 피어오른다

종탑에서 새벽종이 울릴 때
외진 골목길 서성거리던
백년전 낯선 선비처럼
또, 오늘 나처럼
여기 발길이 닿은
어떤 가난한 영혼도
첫눈처럼 새하얀
첫발자국을 떼었으리라

백년을 울렸다는
외로운 종탑에 사는
오래된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가난한 또 고독한 사람들의 도시
외진 골목길에서

사랑하라
사랑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라

시 이낭희(행신고등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