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무를 심었다. 이웃에게 무 모종을 사야겠다고 하니 모종은 팔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럼 무를 어떻게 심어요?” 얼치기 내 질문이다. 웃으시면서 무 씨앗과 청갓 씨앗까지 주셨다. 무 씨앗은 파란색이었다. 놀란 내 표정에 소독을 해서 그렇다고 하신다. 파란 씨앗을 받아 들고 ‘도대체 이 씨는 어떻게 채종한 것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유채꽃과 비슷한 무꽃이 피고 씨앗을 맺었을 텐데...
갑자기 씨앗 채종 과정이 궁금해졌다. 채종을 하지 않으면 진정한 농사꾼이 아니라는 말을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우선, 씨앗을 받았으니 뿌려 보기로 한다. 줄 간격과 포기 간격, 깊이는 얼마 등을 메모하고 오이밭을 정리한 곳에 파종했다. 이틀 만에 싹이 나왔다. 파종해 본 것 중에 가장 빨리 모습을 보여 준 것이 무다. 이틀 만에 난 싹이 신기해 수시로 무밭에 나가 보고 이웃들의 밭도 눈팅한다. 발아기, 솎아주기, 생육기 등등을 메모하고 물을 어떻게 주어야 하며 수확 시기는 언제인지 또 메모해 둔다.
3주쯤 됐을 때 솎아주기를 했다. 잘 자란 것들을 적당한 간격으로 남겨 두고 솎았다. 그새 가느다란 뿌리를 만든 것들이 뽑혀 나온다. 북을 정성껏 돋우고 솎은 것 절반은 닭에게 주고 나머지로 물김치를 담갔다. 마을의 모든 밭에 배추와 무가 자라면서 시야는 다시 초록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웃들의 무밭이 유독 내 눈에 들어온다. 이웃 중에 고추 농사를 예술처럼 짓는 분이 있다. 열을 이은 고춧대에 새빨갛게 달린 고추가 마치 작품처럼 느껴져 사진을 찍기도 했다. 배추도 화초처럼 기르고 마당의 꽃들도 정성껏 가꾸시는 분이다. 어느 날 그 이웃의 무밭을 보다가 멈칫 섰다. 내가 심은 무와 어딘가 달라 보였다. 진한 초록의 잎에 구멍이 하나도 없다. 내 텃밭의 무잎엔 달팽이, 애벌레가 앉아 있는 것을 본다. 그들이 잎을 갉아먹었는지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데 말이다. 초록의 잎이 힘차 보이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될 수 있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부러워할 것 없다고 옆에 선 남편이 말한다. 약을 쳐서 벌레를 없앴을 것이고, 비료를 줘서 성장이 좋고 윤기마저 흐른다고 추측해 본다.
내 텃밭은 가족이 먹을 만큼만 기르는 작은 크기이지만 자연과 공생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는다. 그중에 일본의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 농법의 4대 원칙은 내게 텃밭 가꾸기의 가이던스가 되었다. 그의 책들은 나에게 흙과 풀, 작물과 곤충의 관계 등 자연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도록 하였고 넓게 보도록 가르침을 줬다. 무경운, 무비료, 무제초, 무농약의 4대 원칙의 이유를 설명하는 그의 글은 내게 경전처럼 읽혔다.
현대의 노자라 불리는 그의 글들은 선승의 선문답처럼 알 듯하면서도 이해하기 힘들어 수시로 꺼내 보는 책[‘자연농법’,‘짚 한 오라기의 혁명’-후쿠오카 마사노부 지음, 최성현 옮김]이다. 공리공론(空理空論)을 설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체험으로부터 얻은 사실에 그저 놀랄 뿐이다. 자연을 알 수 있고,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는 과학적 사고의 우쭐거림과 분별적 지식을 버려 시공을 초월한 입장에 서라는 그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 하기는 힘들다. 비료가 작물의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는 항상 일시적이고 부분적이니 그것에 매달리지 말고 시공을 초월해서 보라고 한다. 시공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부분적이고 일시적으로밖에 보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일정한 기간에, 일정한 땅에서, 일정한 수확을 올린다’와 같은 늘 시간과 공간의 테두리 안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것이다.
인간의 방제법은 거시적인 안목으로 보면 자연 질서의 파괴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니 인간이 농약을 가지고 자연 속에 길을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자연의 운행을 방해하지 않고 물러서는 것이 현명한 일임을 말한다. 천적이 제1차, 2차, 3차로 이어지며 해충에 붙은 익충을 죽이는 해충, 그 해충을 죽이는 익충, 이렇게 생물계의 연쇄 관계는 이어지면서 그 해충이 익충이 되고 익충이 해충이 되면서 결국 무엇이 천적이며 해충인지 다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귀촌하면서 나의 인식도 ‘벌레는 있어도 해충은 없다’라고 바뀌었고 그것을 텃밭에서 늘 상기할 뿐이다.
열흘 뒤 이웃집 무는 벌써 어깨를 볼 수 있을 만큼 컸고 내 텃밭의 무도 갈맷빛 옷을 입고 씩씩하게 천천히 크고 있다.(글 얼치기 농부 김상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