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가난한 대지도
가난한 사람들의 가슴도 적시는
추석날 아침 들녘

처마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저 감도
그리움이 키웠다는
저 흔들리는 감잎도
이 비 그치면
더 붉은 가슴들로 뒤덮일게다

자신을 물들여
세상을 적시는, 너처럼
시나브로
가난한 붓 한 자루 곁에 두고
달이 없는
추석한가위 처마끝에서
달을 그린다

어느 불꺼진 창가에
어느 가난한 농부의 뜰에
어미를 잃은 새들의 둥지에
등을 기댄 이들이 사는 마을에

등잔을 들고 나선다

시 이낭희(행신고등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