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민(작가, 초등학교 교사)
인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나오는 인물 중 전 금명이 7년간 사귄 영범과 결혼을 못하게 만든 영범의 엄마에게 눈길이 갔습니다. 자기 욕심 때문에 눈에 차지 않던 금명을 쫓아낸 영범 엄마는 결국 원하던 결혼을 시켰지만 아들에게 버림받습니다.
영범모: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영범: 어머니는 평생 어머니만 불쌍하시죠? 저는요?
영범모: 네가 뭐가 힘들어? 네가? 네가 예민한거지, 네가. 나는 다 너를 위 해서 그랬어. 너 위해 살았어. 걔랑(금명이) 결혼했으면 더 불행했어.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어떻게 나를 이렇게 창피하게 해? 너는 내 인생이야. 내 인생.
영범: 제 인생이에요. 제 인생. 나 바라는 건 한번도 못 가져보는 병신같은 제 인생이라요. 그래도 어머니라도 행복하셔서 됐어요. 행복하시죠?
교사의 눈으로 봐서 그런지 유독 저 장면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직업병인가 봅니다. 실제 교실에 있는 아이들 중에서 자기 자녀에 대해 집착하는 부모를 가끔 봅니다. 먼저 염두해 둘 것은 부모의 집착을 죄악시 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녀를 둔 부모는 어느 순간에 집착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할 필요는 있습니다. 집착의 반대 행동인 방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자녀에 대한 집착이 뭔지 봐야합니다. 집착은 자녀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통제하려는 태도입니다. 집착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보통 자녀에게 얼마나 많은 선택권을 주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엔 부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에 많은 부분 개입하고 통제합니다. 그래서 기준은 초등학교에 들어오고 10살 전후를 봐야 합니다. 이때 아이의 발달심리상으로도 가치판단의 기준을 부모에서 또래집단으로 하고 본격적인 추상적인 학습도 시작합니다.
아이는 정서적으로 부모에게 떨어지려 하고, 그 모습을 보는 부모는 혼란스럽습니다. 얼마전까지 아이는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했는데 부모를 벗어나려는 시도에 여러 감정이 교차합니다. 그때 부모는 불안, 상실, 공포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소유하려는 욕심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놀라우면서도 걱정스러운것은 집착하는 부모의 상당수는 자신이 이런 감정을 지극히 정상이라고 여기는데 있습니다.
볼비(John Bowlby)와 애인스워스(Mary Ainsworth)의 애착이론 (Attachment Theory)에서 집착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애착이란 영아기 시절 양육자와 관계 속에서 형성된 정서적 유대감인데 이때 안정형과 불안형으로 나뉘며 이것은 이후 대인관계의 기본 패턴이 됩니다. 즉 안정감을 가진 아이가 대인관계를 긍정적으로 하고, 불안했던 아이는 대인관계에서도 불안하게 나타나죠. 학교에서 만나는 어른인 선생님을 대할 때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애착관계가 불안했던 아이는 선생님을 간봅니다. 그런데 양가형도 있습니다. 즉 두 감정이 공존한다는 것인데 이런 애착유형은 불안정한 애정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애정을 향한 분노가 동시에 나타납니다. 이런 불안정한 애착이 집착으로 전이됩니다.
애착관계에서 부모가 기억하는 아이는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라 여깁니다. 그 뿌리는 불안정한 애착에 있고 아이가 잘 자라야 한다는 이유로 통제하고, 아이가 자신이 쳐놓은 구역을 벗어날까봐 불안합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에게 세상과 유리된 [무균실]을 만들어 주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아이에 대해 과잉 개입하고 자율성을 가질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말이죠.
그렇다면 이런 아이는 어떤 행동패턴을 보일까요? 보통 3가지 유형이 대표적입니다.
첫째는 모범생으로 살아갑니다. 부모의 집착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자신의 욕구는 억제합니다. 즉 부모가 원하는 아이가 되려 노력합니다. 성실하고 착합니다. 그러나 자기 삶에 주인이 못됩니다.
둘째는 완벽주의자로 살아갑니다. 실패는 용서가 안됩니다. 실수는 해서는 안됩니다. 잘해야 부모에게 인정받는다 여깁니다. 공부도 잘하고 성취도 높은데 불안도 높습니다.
위 두가지 유형은 성장의 과정에서 완벽하게 해체됩니다. 집착하는 부모의 요구를 들어주지만 부모의 집착 역시 그 끝이 없기 때문에 목표점은 점점 올라가고 아이는 소진됩니다.
그러면 세 번째 유형이 나옵니다. 그것은 반항적 공격자입니다. 부모의 집착을 통제로 받아들이고 드디어 공격에 나섭니다. 행동은 폭력적으로 나올 수도 있고, 폭력은 없더라도 부모에 대한 끝없는 비난과 저주를 퍼붓습니다. 이런 반항이 크면 클수록 부모에 대한 죄책감도 커집니다.
그렇다면 교사는 이 사이에서 어떤 상호작용을 할까요?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유치원이나 초등 담임교사가 가장 많이 관찰합니다. 연령이 어릴수록 빈도가 높고, 높아질수록 빈도가 떨어지는데 강도가 거세집니다.
저 역시 이런 부모와 아이를 무척 많이 봤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집착에서 학습된 행동패턴을 교사에게 씁니다. 그런데 변수가 있습니다. 교실엔 다수의 아이들이 있고, 부모가 정해준 패턴이 아닌 규범과 규칙 그리고 행동 패턴이 있습니다. 집착하는 부모는 누구보다 아이가 학교 생활을 잘 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 [잘하기]의 기준이 부모 자신에게 두기 때문에 교사와 충돌할 경우가 생깁니다. 특히 아이의 성장에서 자율성을 강조하는 저와 같은 교사와 집착하는 부모는 큰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집착하는 부모에게 학습된 행동패턴을 가진 아이가 학교에서 하는 행동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저의 관찰에서 근거한 것도 있고, 애착이론에서 차용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충 비슷합니다. 아이는 교사와 부모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그래서 눈치보기를 하죠. 교사와 감정적인 거리두기를 하려고 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극단적인 감정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즉 감정을 표현 할 때 해야 하는데 참고 참았다가 폭발합니다.
“너의 생각은 어떤거야?” “왜 그렇게 생각해?” “아니 엄마(아빠)가 그랬다고 하는 것 말고 너의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어”
대략 이 정도의 질문에도 엄청나게 당황합니다. 감정의 거리두기가 심해지면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모범생이나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아이는 이럴 경우 좀 체 표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면은 거절당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거절합니다. 예의는 바른데 매몰찬 경향이 있고, 타인의 실수와 자신에 대한 관심을 침범이라 생각하고 싸늘하게 대합니다. 내면은 친구를 사귀고 싶고, 교사와 잘 지내고 싶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피합니다. 그러니 내면에 불만이 쌓입니다.
자신에 대한 생각, 의지, 의견 등을 물으면 정답을 찾으려 노력하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 하며, 뭔가 꾸며진 모습을 보이려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부모가 정한 모습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집착하는 부모는 자신의 신념에 차있습니다. 그 신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파악은 안됩니다. 부모와 이런 저런 대화하기 좋아하는 차쌤도 집착이 심한 부모와 대화가 쉽지 않습니다. 피해의식, 선민의식이 공존한 것처럼 느껴지고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부모의 감정을 읽어가는 차쌤의 대화에 불편함을 느끼죠. 그래서 자기방어를 위해 공격적으로 교사에게 대하기도 합니다.
집착을 하는 부모를 만나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교사로서 방법이 없습니다. 원하지 않으면 조언도 해주지 않지만, 교사와의 일상의 대화에서도 집착하는 부모의 날카로움은 느껴집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교사와 학교의 탓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니 대부분 이런 경우를 만나면 교사들은 아이에 대해, 부모에 대해 거의 참견하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죠. 아이는 부모가 좋은 만큼 두렵습니다. 그러니 교사에게 집착하거나, 부모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교사에게 풀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집에서 쉬질 못하니 학교에서 쉽니다. 그러나 학교 생활에서 교사의 지적을 받고 그 짜증과 불만은 부모에게 전달하는 경우도 많아 교사가 큰 곤경에 빠지기도 합니다.
PS: 영범 엄마 역을 열연한 강명주 배우는 드라마 공개를 앞두고 저세상의 별이 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