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디타에서
아바나에선 모히또에 민트 잎을 넣어야
늙은 거리에 취할 수 있고
아바나에선 다이끼리에 라임을 넣어야
골목에 서 있는 바람과 함께 휘청거릴 수 있고
모히또 한 잔을 마시면
잠든 모로 요새에서 카리브의 모서리를 깨울 수 있는
그러니까
민트와 라임 사이는 소설의 도입부만큼 넓었다
그의 옆에 앉아
카리브 해를 향해 그물을 던지는 이유를 묻고 싶었고
청새치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화약 냄새를 뒤집어 쓰고 그린
죽음의 지도 위 남아있는 미끼의 시간
오래될수록 선명해지는 전설을 찾아
카리브의 파도를 섞어 만든 다이끼리 한 잔 손에 들면
휘청이는 생의 미끼를 물고 올라오는 청새치 한 마리
플로리디타에 풀어 줄 수 있을 것 같아
버려진 무기와 사진 한 장 심장 가까이 놓고
죽어서 살아있는 영혼으로 거룩해지는
전설 같은 그의 생애를 올려다본다
쿠바
가슴에 새기고 싶은
올드 아바나
아직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떨리는
헤밍웨이 앞에 참站하는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헤밍웨이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전 세계의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그는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는 기자였다. 그리고 현장에서 체험한 일들을 소설화하는 소설가였다. 19세에 이탈리아 의용군으로 참전하여 박격포탄 파편에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젊은 헤밍웨이가 느꼈던 전쟁에 대한 절망감을 쓴 《무기여 잘 있거라》와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이어진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전쟁이란 빼앗고 뺏기는 단순한 전쟁이 아닌 이상과 현실이 충돌되는 현장을 바라보며 쓴 고뇌의 작품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는가》, 낚시를 즐겼던 그가 쿠바의 아름다운 도시와 카리브해를 배경으로 쓴 《노인과 바다》등 그는 몸으로 글을 썼던 소설가였다. 그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읽으며 꿈처럼 멀게만 느꼈던 푸른 물살을 바라보며 헤밍웨이의 눈이 되어 카리브해의 청새치를 쫓아본다.
타임머신을 타고 도착한 것 같은 중세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올드 아바나의 거리, 페인트 칠이 벗겨진 낡은 건물과 건물 사이 바람에 나풀대는 빨래들이 어우러진 발코니는 어느 예술가의 손을 빌려 만들어진 작품처럼 현재의 슬픔과 과거의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다. 그러나 영혼으로 빚은 아름다운 골목이 서서히 자본주의에 물들여지고 있는 광경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돌아보면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헤밍웨이가 걸었던 길들 중 두 곳의 길을 걷는 행운을 가질 수 있었다. 첫 번째 길은 헤밍웨이가 스페인의 론다 투우장에서 투우를 관람하고 난 뒤 누에보 다리까지 걸었었다는 길을 따라 걸었다. 투우장에서 소의 죽음을 보면서 죽음의 미학을 발견하고 투우의 안내서와도 같은 [오후의 죽음]이라는 소설을 발표한 헤밍웨이의 길이다. 그리고 두 번째 길이 바로 이 쿠바의 올드 아바나 거리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손으로 가리며 걸었을 헤밍웨이를 생각하며 그 거리를 걸었다. 변화의 느림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올드 아바나 건물 위로 세월의 주름마저 그대로 내려앉아 파란 하늘과 어울리며 오후의 빛으로 깊어지고 있는 골목 그리고 가슴이 탁 트일 듯 시원하게 뻗어 있는 카리브 해안을 따라 쿠바인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말레콘 방파제, 오늘도 자유와 풍요를 꿈꾸고 있는 젊은이들이 말레콘 방파제에 서서 카리브 해의 밀려오는 물살을 바라보고 있다.
* 김양숙, 1990년『문학과 의식』시 등단 2009년 [한국시인상]수상 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수상, 2013년 부천문화예술발전기금수혜. 202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활동비수혜. 시집『지금은 뼈를 세우는 중이다』,『기둥서방 길들이기』,『흉터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고래, 겹의 사생활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