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후(전 정의당 의원)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문제의 정책은 제도의 변화를 통해 경쟁을 줄이고 서열을 완화하는 게 아니라 욕망의 사다리를 더 많이 만들어 더 많은 사람이 그 사다리에 매달리게 하는 것으로 이게 과연 '교육'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정책인지 먼저 의문을 갖게 했다.

이미 거의 모든 학생들에게 사교육의 얼룩이 조금씩은 묻어 있으니, 욕망의 미끼를 10개로 부풀려 던져준들 그게 무에 대수겠는가? 오히려 내 아이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가까워졌다고 속으론 좋아할 거다... 그리 여기는 걸까? "서울대의 '꿈'이 네 집 울타리 밖까지 찾아 왔느니라! 곧장 문을 열고 나가 맞이 하라!!" 그렇게라도 말하고 싶은가?

지금의 서울대를 그대로 두고 서울대를 모델로 한 대학을 10개 만들면 경쟁이 눈에 띄게 완화될 것이라 여겼다면...... 아니다. 잘못되면 오히려 '원조 서울대'는 더욱 특권화의 길을 걸을 것이며, '유사 서울대'는 나머지 대학(이런 말은 정말 쓰고 싶지 않지만) 위에 안정적으로 군림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

그런데 이런 걱정들은 낄 틈이 없다. 며칠 전에는 교육관련 세제 개편 계획이 보도되더니, 엊그제는 '서울대가 지역거점 국립대와 협력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한다'는 요상한 보도가 서울대 아닌 다른 곳의 전달 형식으로 뜬다. 정책에 대한 공론화는 제쳐두고 그저 군불 지피기만 하는 게 법비, 법기술자들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 '경쟁 완화'라는 목적이 아무리 선하고 그 방법이 첩첩산중에 둘러쌓여 난망하다 하더라도 욕망의 사다리를 더 많이 만드는 비교육적 방법까지 이 시대의 '선'이 될 수는 없다.

정책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고등교육에 지금 필요한 정책이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면, 그래서 경쟁을 완화하고 지역의 균형발전을 꾀할 수 있다면, 같은 논리로 '특수목적고'와 '전국 단위 자사고'도 지금보다 10배 더 많이 만들자는 논리는 잘못된 것일까? 그것들도 10배쯤 더 만들면 '경쟁 완화'에, '지역의 균형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서울대를 상징적 모델로 한다면 그것을 더 만들어 10개까지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없애거나 줄이는 사고와 고민이 필요하다. 서울대를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 대학(거대 사립대)도 서울대와 마찬가지로 학과와 학생 수를 대폭 줄여 연구중심대학으로 자리잡게 하며 이를 지방 대학에 배정하고, 지방 대학은 거점대학이든 사립대학이든 특성화를 중심으로 대학간 연계체계를 갖춰 모든 대학이 교육 및 연구의 연계성을 갖추도록 하는 단계적 정책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이 서울대를 10개 만들어 유사품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속이는 것보다 훨씬 미래지향적인 정책이라 여긴다.

교육정책에서의 조급성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피해를 준다. 정책 목표로 제시되는 '경쟁 완화'도 학생을 중심에 둔 사고 아닌가. 따라서 학생을 더 촘촘한 경쟁으로 내모는 것은 아닌지, 지금 우리 사회 여건으로는 학생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고등교육에 혼란을 배가시키는 것은 아닌지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집단지성을 모으는 공론화가 필요한 것이다.

바쁘다고 바늘 허리에 실을 꿸 수는 없다. 과문한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덜 익은 정책으로만 보인다. 초중등교육에 비추어 일관성도 없다. (물론, 그러들, 무슨 상관이랴. 실패와 혼란은 그들의 차지가 아닌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