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하식 작가


장백산세계지질공원의 얼지 않는 ’장백폭포‘로 가는 길. 덩달아 전용 차량이 장백산동북아식물원을 감싸고 도는 건 덤이었다. 빼곡한 자작나무 숲속을 지나가는 길에 일정 간격을 두고 자리한 양봉장들은 생태계를 감안한 듯 아담했다. 예상과는 달리 비교적 순탄한 진입로. 그리 가파르지 않은 계단이 이어졌고 김이 나지 않는 노천온천 지대가 바로 곁에 있었다. 별다른 경관은 없으나 아직 녹지 않은 잔설조차 눈요기가 되는 장면들.

대자연을 그대로 두니 널브러진 돌들마저 뭇 길손을 반기며 제자리를 지키는 모양새였다. 새파란 이끼와 이름 모를 풀들이 한껏 어우러진 풍경화. 비록 고산지대여서 우거진 삼림은 아닐지언정 황량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저만치 골짜기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폭포수라고 하기에는 가느다란 흐름이었다. 게다가 ’온천광장‘이란 한글 간판도 낯설기는 매한가지. 아마도 따뜻한 시냇물에 두 손을 담그는 상상력이 만든 실망감일 게다. 그나저나 토목공사의 정교함은 중국이 구축한 건축학개론이 틀림없다. 곡선미를 갖춘 철제다리를 타고 내려와 설익은 달걀로 허기를 달랜 뒤 돌아선 참이다.

장백폭포


백두산 천지를 북파로 오르는 길은 초행이었다. 100여 대의 대형버스에 269대의 셔틀버스 기사만도 대략 500명을 웃도는 일자리. 하지만 초장부터 짙은 안개에 휩싸인 날씨는 좀처럼 풀릴 기미조차 없었다. 그에 대비해 여행사는 이튿날 서파로 돌파하는 여정을 기획했으나 그 또한 운무에 떠밀려 천지로 향한 발걸음은 무거웠다. 가이드 말마따나 '백' 번 와야 '두'번 본다는 농담이 말의 씨가 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세찬 비바람을 피해 대피소에 머문 틈에 잠시나마 말이 통하는 이들을 만난 건 크나큰 소득. 지난날 질식할 만큼 힘겨웠던 날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일만으로도 서로를 위무하는 시간이었다. 서파로 오르는 계단은 무려 1,442개. 북파 산문이야 구불구불 지프를 타고 코앞까지 데려다주니 창밖에 쌓인 눈더미를 보는 잔재미에 잔뜩 웅크린 채 피어난 흰 꽃을 동무 삼았으나 서파로 향한 오르막은 꼼수를 허용치 않았다. 다만 16년 전 마주한 천지와 달라진 거라면 나란히 나무계단을 설치해 훨씬 편하게 오를 수 있다는 점과 정상에서 조중국경비를 가랑이 사이에 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천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제철이 아니어서 텅 빈 산정화원과 약조를 어긴 여행사 때문에 백두협곡 차창 관광마저 무산된 아쉬움을 도문(13만여 명 거주)에서 무심히 흐르는 강물을 보며 일부 해소할 수 있었던 건 다행이다. 압록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흥미롭게 바라본 신의주와 지척인 두만강에서 살펴본 북한의 모습은 완전히 딴판. 어찌 됐건 단둥에서는 간간이 오가는 짐차들을 목격했는데, 여기서는 날카로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가로막힌 국경선을 접하노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게다가 바로 눈앞에서 극도로 경계하며 셔터를 눌러야 한다는 사실을 수긍하는 게 내키지 않았는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띄운 유람선이 묶여 있는 현장에 슬그머니 카메라를 들이대니 대번에 제재가 들어왔다. 하릴없이 두만강 타임 터널부터 정해진 이동로를 따라 왔다 갔다 하면서 호기심을 채웠고, 중국 도문과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 철교를 가리키는 큰 글자판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둑방에 즐비한 상가를 구경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리하면 좌우 강변에서 바라본 북한 산야의 차이는 확연했다. 신의주는 온통 민둥산이었는데 남양마을 산에는 나무가 있었다.

별반 기대하지 않았던 '연변박물관'은 꽤 볼만한 장소였다. 중국 100대 중점 박물관에 걸맞은 배치도는 합격점. 건물 밖에 설계한 부조물이며 중후한 외형이 그랬고, 내부의 전시물로 보아 큐레이터의 역량이 돋보였으며, 조선족의 이주역사와 고유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낸 기획으로 손색이 없었다. 자국에서 중화민족공동체의식을 확고히 수립하기 위해 수집한 문헌과 문물을 모아 다매체를 이용한 몰입식 체험 공간에 진열함으로써 56개 다민족이 발산하는 다원적 일체 구도를 형성하려는 의지를 형상적으로 설명한 시도였다. 고로 시진핑의 정책을 중국 굴기의 정신사로 녹여낸 건 당연하다. 이들 정서에 맞게 풀어내면 연변에 흩어져 사는 인민들이 민족단결의 진보사업을 추진한 결과 중화민족 대가정의 일원으로서 기본 업무와 임시 전람을 통해 우리는 한가정 한마음으로 중국몽을 이뤄가는 위대한 실천의 장을 화폭에 생동감 있게 구현한 참이다. 이로써 이번 여행의 주목적은 얼마큼 달성한 터다. 다만 씁쓸한 건 중국은 이미 괄목상대할 만한 데 비해 북한은 아직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 필자 조하식은 산문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현재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s://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하며,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 코너를 16년째 연재 중입니다.

연변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