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응우의 자연미술 이야기, 인도예술유목 4

아, 노트북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8.27 06:00 | 최종 수정 2024.08.27 17:27 의견 3

3년 전 명퇴를 앞두고 노트북과 디지털 카메라를 샀다. 이 물건들은 명퇴와 함께 시작된 나의 여행에 늘 동반하고 있다. 하지만 두 해가 넘었는데도 아직 길잡이도 읽어보지 않고 그냥 아는 것만 사용하고 있다. 그야말로 초원의 부시맨 앞에 하늘에서 떨어진 콜라병 같은 것이다. 이건 컴퓨터를 개발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런데도 참 편리한 도구라는 생각을 할 만큼 훌륭한 물건이다. 아주 제한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그들은 이미 나완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노마드의 종반 ‘부지(Buhj)’를 수도로 했던 왕조의 영광과 종말을 고스란히 간직한 프라그마할 왕궁 답사 후 점심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먼 여정을 앞두고 소지품 확인차 가방을 열어보니 노트북이 없었다. 어찌 된 일일까? 어젯밤 숙소에서 베개 밑에 두고 잤는데 아침에 그냥 두고 나온 것인가? 이를 어쩌나! 만약 분실했다면 그동안 저장해 둔 내용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노트북을 찾아오기 위해 오토릭샤를 타고 간밤의 숙소로 되돌아가면서 마음속이 복잡해졌다. 만일 게스트하우스의 사람들이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막막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하니 얼굴이 깡마르고 새까만 관리인이 나를 보자마자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그의 방에서 곧바로 노트북을 들고 나왔다. 그는 어젯밤 우리 방에 들락날락하여 낯익은 얼굴이었다. 고마운 마음에 짜이 한 잔 하라고 돈을 내밀었더니 극구 사양하였다. 노트북을 손에 들고나오며 생각해 보니 실수는 했지만 참 운이 좋았다. 하마터면 바로다에 도착해서 확인할 뻔했고, 그때는 이미 ‘지나간 버스’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미 지난 일이고 가정이지만 사람은 누구에게나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 좋다는 것을 여러 번 확인했다. 간밤에 그 관리인이 우리 방을 여러 번 들락거린 것은 술 생각때문이었다. 술 한 잔이 뭐라고 그걸 받아 들고 얼굴빛이 환해졌던 그였다. 만일 그때 우리가 인정머리 없는 사람으로 보였더라면 그도 마찬가지로 “어쩌죠? 그런데 없네요”라고 시치미를 뗄 수도 있는 일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부지의 두 명인 : 좌측 ‘키란 바겔라(Kiran Vagela)‘, 우측 키릿 데이브(Kirit Dave)’. 키란은 환경 친화 건축가로 대안 건축학교 후난샬라(Hunanshala)의 실질적 운영자다. 키릿은 자산가로 이 지역의 특산물 수직공예 학교와 박물관 갤러리를 직접 운영하며 현대화 작업을 하고 있다. 부지는 구자라트 북부 커치의 중심도시다.

삼중고

모든 사람은 자유를 원한다. 그러나 자유는 그 권리를 상실했을 때 더욱 절실해지는 소중한 가치다. 우린 일상에서 자유가 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것은 마치 공기 중의 산소와 같아 의식하지 않아도 늘 제공되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 전 병영훈련 중 겪은 가스실의 고통이 생각난다. 마음 놓고 숨을 쉴 수 있는 고마움을 처음 느껴 본 추억이다.

구자라트는 주 전역에 걸쳐 채식과 금주의 땅이다. 채식은 당연히 종교적 이유에서 연유된 것으로 인도 전역이 같지만 강제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지역과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인도 사람들도 육식을 즐긴다고 한다. 인도의 대부분 지역에서 닭, 염소, 생선을 먹으며 신분 계급이 낮은 사람들은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소나 돼지고기도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구자라트는 라자스탄과 함께 특별히 채식이 강조된 지역이다. 심지어 육식을 조리한 솥과 그릇은 닦는 것조차 꺼린다.

아메다바드의 조형물 : 이 조형물은 간디의 ‘위대한 소금 행진’을 기리기 위해 소금를 쌓은 형상을 하고 있다.

화가 이응우의 자연미술 이야기, 인도예술유목 4

이미 아는 바와 같이 구자라트는 위대한 영웅 ‘마하트마 간디’의 고장이다. 그의 고향은 중부의 ‘라지코트(Rajkot)’라고 하는 도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인도의 산업과 경제가 영국의 수탈에서 벗어나기 위해 감행한 “솔트마치(Great Solt March)”도 구자라트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며 그의 유적 “간디 아쉬람(Gandhi Ashram)”도 주도인 아마다바드에 있다. 따라서 구자라트 주의 사람들은 그의 자유를 향한 투쟁을 추모하는 뜻으로 금주를 주법으로 제정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외국인과 타주에서 온 사람들은 법과 무관하게 음주를 할 수 있다. 다만 사전에 음주 허가서를 받아야 했다. 필자는 평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음주가 법으로 금지된 곳에선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와 보니 술 없이 어떻게 살까? 라는 궁금증이 사라졌다. 알고 보니 사는 방법이 다 있었다. 나머지 자세한 부분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 과거 사우디 현장의 노무자들이 해결한 방법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노마드가 계속되는 동안 진정 예술가를 힘들게 한 것은 자연환경 또는 숙식 등의 악조건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우리를 힘들게 했던 것은 육식의 제한과 금주였다. 특히 금주는 육식보다 더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일 것을 깨닫게 했다. 일단 음주 허가는 받았지만, 술을 구하는 것이 만만치 않고 그 양도 정해져 있다. 그리고 한 번 구매하면 10일 후에나 재구입이 가능하므로 될 수 있으면 독주를 사게 되고 마실 때도 평소보다 한두 잔을 더 마시게 된다. 따라서 아무리 독한 술이라도 일단 개봉하면 순식간에 빈 병이 되고 만다. 그러다 보니 한 번 확보한 술로 10일을 버텨야 하는데 이틀이면 동이 나고 나머지 일주일은 기다려야 한다. 구자라트 사람들은 이미 익숙한 처지지만 이방인들에게는 먹고 마시는 자유를 잃은 불편함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ITM대학의 기숙사에서 전시 준비를 하는 동안에는 흡연도 허락되지 않아 세 가지 모두 해당하는 사람은 그 불편함이 수월치 않았을 것이다. 얼마 후 대학 당국에서 이를 감지한 듯 작업장 옆에 자유로운 영혼들을 위한 간이 천막을 쳐 주었다.

코로나 : 황무지 들에 잘게 부서진 새까만 돌을 가지고 밤하늘의 ‘코로나 현상’을 재현하였다.
맞보기 : 리투아니아 작가 사울리우스 발리우스(Saulius Valius)의 작품. 나는 단지 그의 모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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