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진주고등학교 교사)
1. 분위기와 다른 현실
2023년, 국가와 사회, 그리고 학교가 아무런 방어막이 되지 못한 상황에서 23세의 젊은 교사가 홀로 모든 것을 견디다 마침내 죽음을 선택한 안타까운 사건 이후, 만 1년이 지났다. 수많은 교사들이 당하고 있는 불편 부당함이 서이초 선생님 한 분의 죽음으로 드러났을 뿐 아직도 여전히 학교에서는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고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그저 혼자 그 문제와 싸우고 있다. 도대체 국가는 어디에 있고, 우리 사회의 ‘정당성’과 ‘합법성’, 그리고 ‘공화’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2023년 가을 국회는 부랴 부랴 기존의 법률을 개정했고(2023.9.27.) 2024년 3월 28일에 법이 시행되었다. 그 법률이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약칭: 교원지위법)’인데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2조(교원에 대한 예우) ① 국가, 지방자치단체, 그 밖의 공공단체는 교원이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높은 긍지와 사명감을 가지고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② 국가, 지방자치단체, 그 밖의 공공단체는 교원이 학생에 대한 교육과 지도를 할 때 그 권위를 존중받을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하여야 한다.
③ 국가, 지방자치단체, 그 밖의 공공단체는 그가 주관하는 행사 등에서 교원을 우대하여야 한다. <개정 2016. 2. 3.>
④ 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서 규정한 사항 외에 교원에 대한 예우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신설 2016. 2. 3.>
위 법률①②③④항은 모두 개괄적인 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노력하여야 한다, ~배려하여야 한다, ~우대하여야 한다, ~필요한 사항은… 다시 말하면 하위의 훈령이나 조례, 규칙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제하고 있다. 이를테면 담당 부처, 즉 교육부의 훈령이나 각 지방자치단체(특별, 자치 시 및 각 도) 의회의 조례, 각 지방자치단체(도 교육청)의 규칙이 뒤 따라야 하는데 아직 이 법률에 의해 제정된 구체적인 훈령, 조례, 규칙은 미미하거나 거의 없다. (개정 이전에 제정된 것은 있다.)
교사에게 닥친 이 엄청난 위험과 부조리의 원인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국가와 사회가 그리고 학교를 관할하는 도 교육청이 적극적으로 선생님들의 교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의 제정 이유인데 법률 자체는 모두 선언적 규정뿐이다. 개정 전에 제정된 위임조례는 ‘법률지원단’ 규정이 전부다.
2. 공격과 방어 그 상대적 권리로서의 교권
2023년 9월 1일 교장에서 교사로 돌아와 처음 겪은 교권 침해는 놀랍게도 학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학교, 즉 교장 교감에 의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개인의 복무(연가, 출장)를 위해 교장이나 교감의 사전 승인을 요구하는 것에 잠시 참담했었다. 아주 미미하지만 교장이 교사의 고유한 권한을 침해하는 것을 당연한 과정이나 합법적 절차처럼 이해하고 있는 다른 교사들의 태도를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24년 현재, 대한민국 학교에서 학생에 의해 침해되는 교권과 학부모에 의해 침해되는 사소한 교권은 부지기수지만 놀랍게도 교사에게는 그 어떤 방어 장치도 없다.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그 일이 교사의 삶 자체를 흔들어 놓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법이 작동하는 것을 보며 교권 보호는 철 지난 유행가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가치의 문제로 회귀한다. 사회와 국가의 가치가 학교를, 교사를 단순 도구화시키는 이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권은 그저 공격과 방어의 상대적인 권한쯤으로 치부된다. 이전 시대의 신성한, 고결한, 권위는 이제 흔적조차 없고 철저한 계산과 공격 방어 논리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최근 학교를 무대로 하는 법률시장이 변호사들의 주 무대가 되고 있는 것을 보며 우리는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법률지원단이라는 위임규칙이 이 모든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이제는 법률에 의해 보호받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법률은 개인의 삶이 극단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면 학교는 더 이상 인격 완성의 장도 아니고 더 이상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움이 있는 장소도 아닌 비정한 뒷골목과 다름이 없는 곳이 되고 만 것이다.
역시 이런 문제의 뒤에는 대학 입시가 있고 그 입시를 부추기며 이권을 추구하는 권력과 자본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압도적 불의를 위해 나는 오늘도 헌신하고 있는 상황에 깊은 자괴감이 든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부조리를 부수기 위해 수많은 교육 운동이 있어왔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 자리를 맴돌고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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