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응우의 자연미술 이야기, 동유럽 예술 유목 2

흑해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7.16 06:57 | 최종 수정 2024.07.16 07:00 의견 6

돌아오는 길에 발생한 동료끼리의 가벼운 접촉 사고만 아니었더라면 참 좋았을 오전의 일정이었다. 오후에는 내일부터 진행되는 일정 준비와 긴장을 풀고 쉬다가 해그늘에 마을과 중앙을 관통하는 냇가를 돌아보았다. 가브로븟치 마을은 마치 공주의 원골처럼 불가리아 자연미술의 본부가 있는 곳이다. 마을을 끼고 도는 냇가엔 목청이 큰 개구리가 살고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물고기가 서식하며 냇가에 발목을 담근 바위벽에는 태고의 신비로운 화석들이 즐비했다.

장장 30일간의 쉽지 않은 일정을 앞두고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은 일행의 안전과 건강이다. 수십 년 자연현장에서 작업하는 동안 크고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신의 가호가 있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예술유목민의 식사 : 불가리아 유목 중 루멘 드미트리프 감독이 숙소에서 일행을 위해 바비큐를 굽고 있다. 지켜보는 사람은 헝가리 에게르대학 자연미술과 피터 발라쉬 교수다.


대장정을 앞두고 참가자들 모두 건강에 이상이 없었으나 야투의 고승현 선생이 피로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비좁은 기내의 불편함과 현지의 기후가 생각보다 덥고 숙소는 냉난방시설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집 떠나기 전부터 편두통 때문에 두 번이나 시침을 했는데, 이번엔 오른쪽 안면 근육이 떨리고 우둔하다고 했다. 맨눈으로도 눈꺼풀이 늘어져 보였다. 오후 일정은 특별한 것도 없으니, 숙소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오랫동안 힘겨운 생활과 비엔날레 운영과 관련해 받았던 스트레스와 심리적 압박이 급기야 징후로 나타난 것 아닌가 싶다. 요즘 수명이 연장되었다고는 하지만 회갑을 넘긴 중년엔 최우선 가치가 건강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국의 자연과 환경, 그리고 문화를 접하며 오랫동안 심신을 옥죈 것들을 모두 날려 보내고 아름다운 작업과 함께 육신의 건강도 회복했으면 좋겠다.

흑해의 자화상 : 바닷가에는 파도에 밀려온 갖가지 오브제로 가득했다. 말로만 듣던 흑해를 처음 만난 기념으로 출처를 알 수 없는 부스러기들을 모아 자화상을 그려보았다.


흑해에서

구름은 짙고 바람 서늘한 날

서해가 파랗듯

흑해도 검지 않다

파도는 끝없이 바람을 타고

검푸른 유혹 바다를 덮어

모래판을 구르다 구르다

살 빠진 빈 껍질만 즐비할 뿐

흑해는 텅 비었다

바다인지 땅인지

구분조차 아득한 일

그냥 모래밭에 앉아

얘기나 들을까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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