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의 철학, 장자와 혜자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7.10 06:16 | 최종 수정 2024.07.10 06:29 의견 0

김준식(진주고등학교 교사)

1. 장자와 혜자(혜시)

기록에 따르면 ‘장자’와 ‘혜시’는 동년배이거나 한 두 살 차이가 나는 사이였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혜시’가 권력의 주변에서 이런저런 활약을 하다가 쫓겨난 이후 ‘장자’가 사는 송나라(전국 시대의 송나라)로 오면서부터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장자』에서 ‘혜시’는 ‘혜자’로 26~7회 언급되고, ‘혜시’로는 9~10회 정도 언급될 정도로 ‘장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사람이다. ‘장자’보다 20년 정도 먼저 죽었는데 ‘장자’는 그 외로움을 『장자』 ‘徐无鬼서무귀’에서 이렇게 토로한다.

‘장자’가 ‘혜시’의 무덤 앞에서......

“自夫子之死也 吾無以爲質矣 吾無與言之矣(자부자지사야 오무이위질의 오무여언지의)” “혜시가 죽은 뒤로 상대가 없어져서 더불어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졌다.”

여기서 ‘夫子’, 즉 ‘그 사람’이 ‘혜시’이다.

하지만 때때로 ‘혜시’는 ‘장자’의 말에 자주 딴지를 걸어 ‘장자’를 난처하게 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혜시는 당시 명가(일종의 논리학자들)의 대표자였기 때문에 매우 당연한 이야기로 생각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장자』 ‘추수’에서 ‘장자’가 ‘혜자’와 함께 호수의 돌다리 위에서 나눈 대화, 물고기의 마음을 알았느니 말았느니 하는 이야기를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보인다.

어쩌면 ‘장자’도 가끔 ‘혜시’와 대화 중에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2. 민주주의

의견이 다양하다는 것은 민주적이기는 하지만 조금 혼란스럽다. 고백하자면 나는 민주적이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요즘 들어 자주 깨닫는다. 예를 들어 어떤 문제에 대하여 내가 의견에 내는 경우, 혹은 어떤 사태에 대하여 해석을 내놓는 경우, 그것에 대하여 사람들은 매우 다양한 의견을 낸다. 나와 반대되는 의견은 그런대로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으나, 주제를 빗겨 난, 혹은 주제와 무관한 전혀 엉뚱한 의견은 솔직히 부담스럽고 싫다. 이 지점에서 나의 비민주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다양성으로 보기에도 너무나 엉뚱한 의견들이, 나의 의견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유로 내가 대부분 수용해야 된다는 것이 나에게는 모순으로 느껴진다. 마치 ‘장자’ 이야기에 딴지를 거는 ‘혜자’ 이야기는 때로 정겹고, 때로 논리적이기는 하지만 밑도 끝도 없는 엉뚱함과 비틀기는 제법 힘겹다.

범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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