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진주고등학교 교사)
2025년 이때쯤으로 예정하고 이런저런 구상을 하고 있는 『중학교 철학 4』의 핵심 주제는 ‘실존(Existence)’이다. ‘실존’이란 그것이 물질적인지 혹은 정신적인지 그 상태와 관계없이 존재자(Entity)와 실재(Reality)가 상호작용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즉 존재의 존재론적 속성이다. (Edward N. Zalta, 『Existence』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2016.)
어원상으로는 고대 프랑스어의 현실(existence)과 라틴어 existentem/exsistentem(주격은 existens/exsistens), 즉 ‘존재하는’의 의미이며 역시 라틴어 existere/exsistere, 나타나다, 나오다, 출현하다, 눈에 띄다, 일어나다, 변하다의 의미가 있다. 문자상으로는 ex’ 앞으로’와 sistere’ 서다’의 뜻이 합쳐져 모든 것에 앞서는 무엇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실존’이라는 단어 속에 들어있는 ‘존재’는 서양 철학의 오랜 숙제였는데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자들(‘탈레스’, ‘헤라클레이토스’, ‘아낙시만드로스’-입장이 조금 달랐지만)로부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르기까지 ‘존재’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철학적 선결과제였다.
그 후 ‘플로티노스’와 ‘안셀름-캔터베리의 안셀름’,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에게는 ‘존재’는 곧 ‘신’의 문제와 연결되었다. 물론 ‘스피노자’나 ‘라이프니츠’에게도 존재 혹은 실존은 ‘신’의 존재를 규명하는데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동양에서는 일찍이 ‘힌두교’에서 ‘존재’를 ‘순수의식(Purusha-원인)’과 ‘물질(Prakriti-상태)로 구분하였고(형이상학적 이원론) 뒤 이어 출현한 불교에서는 존재를 3가지 형태로 나누어 생각하였다. 즉 aniccā (무상), anattā (무아), 그리고 dukkha (고통)로 구분하였다. 무상無常은 불교의 세계관이다. 즉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무상이다. 이어서 무아無我란 불변의 실체라 할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고통苦痛은 존재의 본질이다. 즉 살아 숨쉬는 존재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의 상황인 것이다.
도덕경에서 ‘실존’의 의미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장은 개인적으로 6장이라고 생각한다. 6장은 해석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의미로 읽히는데 얕은 나의 생각으로는 노자께서(이 글을 노자가 지었다고 간주하고) 실존의 문제를 고민한 흔적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노자도덕경 6장은 이러하다.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면면약존 용지불근.)
중요한 것은 해석인데 나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6장의 해석은 여러 책에서 전혀 다르기도 하다. 대부분 조금씩 다르다.)
’도’(계곡의 신을 ‘도’로 해석)는 죽지 않으니, 이게 바로 신비한 음陰(암컷)이다. 신비한 음의 문(도道로 나아가는 입구)은 천지의 근원이니 (천지는) 연이어 존재하고(항존 하고), 쓰임에 수고로움이 없다(쓰임 자체가 곧 천지가 실존하는 이유다).
(추측건대) 노자는 일생 동안 산과 그 사이 계곡에서 언제나 흐르는 물을 보며 (여성성의 특징인) 생성과 번성, 그리고 유지를 보았을 것이다. 일생 동안 보아온 그 수많은 계곡에서 노자는, 삶의 유한함 동시에 죽음의 문제, 그리고 순환의 상황을 보았을 것이다. 도덕경 28장에도 유사한 내용으로 시작되면서 ‘통나무(樸)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특히 6장은 원시종교의 여성 생식기 숭배에 기초한 여성성이 강조되는 대단히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실존의 문제를 도의 관점에서 은유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설명이다.
도道는 불변하고 동시에 불사不死의 원리이기 때문에 도道를 본받으려고 하는 것은 곧 인간이 불사不死 혹은 불멸不滅의 존재가 되기를 열망하는 것과 같은 의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종교적인 도교道敎의 역사는 이러한 해석의 기초 위에 성립되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중앙교육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