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의 교육단상, 스승의 날, 선생님께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5.15 06:32 | 최종 수정 2024.05.15 20:25 의견 0

오늘이 스승의 날이군요. 교사에게 스승의 날은 참 곤혹스러운 날입니다. 바깥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학교에서 태평하게 이날을 맞는 교사는 거의 없습니다. 스승의 날을 만들어 기념하기 시작하던 1960년대만 해도 교사를 존중하고 우대하는 풍토가 있었습니다. 가난한 시대에 교육을 통해 입지를 다지려는 시대적 의지도 있었고,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군사부일체의 유교적 전통과 권위주의적 정치풍토의 영향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제 기억으로는 2000년을 전후하여 교육과 교사는 비판과 경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던 시대에 학교를 비롯한 공직사회의 촌지 문화가 우선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교직원노동조합의 자정 운동으로 지금은 학교에서 촌지는 없어졌습니다. 교육과 교사가 사회급변의 시대적 요청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일정 부분 맞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화에 따라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평등적 사고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교육과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사회적 영향으로 교육계 내부에는 스승의 날을 폐지하자는 주장부터 교사의 날 또는 교육의 날로 이름을 바꾸자, 2월 학기 말로 날짜를 바꾸자는 입장까지 여러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학교는 이제 스승의 날 기념식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학교장 재량휴업일로 정해서 쉬는 학교도 많습니다.

사실 이런 사회적 현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교육에 대한 관점이 크게 바뀐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교육을 ‘사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 학교 보내는 일을 ‘선생님들에게 아이를 맡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피와 살은 부모로부터 왔으나 혼과 정신은 교사가 부여한다고 여겼기에 교사에게 ‘제발 우리 아이 사람 만들어 달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이제는 교육과 학교는 지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통로 이상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교육은 점수, 등수, 입시, 인 서울 대학의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교육에 대한 이런 시각 변화는 곧 교사에 대한 학부모의 기대를 스승에서 전문직업인으로, 다시 기능인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이제 교육소비자인 국민에게 교육은 ‘부리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인간 형성(Bildung)’이라는 교육의 본질은 변할 수 없고, 교사 없이는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학부모도 교육에 대한 이런 시각을 가져야 자녀의 교육이 올바르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교사도 이런 관점을 확실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한때 교사를 스승으로 사회에서 우러러봐 주던 때가 있었습니다. 스승이라는 말은 영광의 말이기도 하지만 족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교사는 노동자, 전문직, 성직의 요소를 두루 갖춘 직업입니다. 어느 하나만을 강조해서 다른 측면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스승은 교사가 스스로 자신을 부르는 말이 아니라, 가르침의 존경이 싹틀 때 배우는 사람의 마음에 저절로 자리 잡는 호칭입니다. 교사가 모두 스승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절밥을 오래 먹었다고 큰스님이 되는 것이 아니듯이, 교직에 들어섰다고 그리고 오래되었다고 저절로 스승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가르치는 일을 세심히 성찰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매만져 줄 때 아이들 입에서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탄성이 바로 스승의 자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많이 선생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처럼, 굳이 스승이 되려고 애쓰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인위적인 노력은 허방에 빠지고 항상 절망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면, 말할 수 없는 악조건 속에 위대한 교육적 성취를 이루어내는 영웅적인 교사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현실에서는 소수의 영웅적 교사가 필요한 게 아니라, 날마다 그만그만한 일이 벌어지는 일상적 교실 상황에서 하루하루 아이들과 싸우며 조금씩 이루어내는 교사가 필요합니다. 교실 속의 아이들은 천사가 아닙니다. 교육의 아름다운 이념도 교실 속에서 말 안 듣는 아이들과 싸우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영웅적 서사가 아니라, 루틴에 함몰되지 않고 일상에 지치지 않는 교사가 위대한 교사입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일상에서 쉽지 않은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가는, 그러나 드러나지 않은 훌륭한 교사들을 저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 감히 스승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지치지 않는 담대한 용기를 가진 교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빛이 나는 법입니다. 교사의 길은 끝없는 배움의 길이기도 합니다.

선생님, 올해 스승의 날은 내 교실 속에 마음 쓰이는 아이에게 편지 한 통 또는 카톡 문자 하나 써 보내는 특별한 날로 하면 어떨까요?(전종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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