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응우의 자연미술 이야기, 영욕의 땅에 부는 바람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3.27 07:10 | 최종 수정 2024.03.27 07:30 의견 7
바람부는 도버해협에 선 마틴 후레드
. 나무정령
후레드는 2018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에 ‘나무정령(The Spirit of the Tree)’이라는 인생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오랫동안 석고 마스크를 활용한 퍼포먼스를 지속했으나 이 작업 이후 대형설치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남부 파리의 매시 팔레조(Massy Palaiseau)역에서 TGV로 100분 프랑스 5대 도시 중 하나인 릴(Lille)에 도착했다. 이곳의 보헤미안 친구가 어린 딸을 데리고 플랫폼에서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는 2003년 공주 산성에서 작업할 때의 장난기 심한 젊은이에서 어느새 구레나룻이 희끗희끗한 중년의 어른으로 변해 있었다.

후레드와 마나
릴(Lille)의 시장을 딸 마나(Mana)와 함께 걷고 있다. 그날 우리는 김치를 담기 위해 소고기보다 비싼 배추를 사야 했다.

매우 현대적인 건물들이 들어찬 역전의 신구역을 벗어나 구도심으로 들어오니 역시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옛 건물들이 즐비하고 이국적 풍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번화한 구역을 약간 벗어난 곳에 그의 작업실과 보금자리가 있었다. 아래층에 마련된 공동 작업실은 공간 이용이 그리 각박하지 않아 대부분 프레드의 물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인이 아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월세 250유로 이만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는 이 집에서 다섯 살이 채 되지 않은 딸 마나(Mana)와 둘이서 사는 것이다. 아이의 엄마는 벨기에 젊은 작가라고 했다. 어쩌다 눈이 맞아 사고를 쳤는데 그만 아이가 생겼고, 아이 엄마는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양육할 생각이 전혀 없어 자신이 데려다 키울 뿐, 한 번도 같이 살아본 일이 없다고 했다. 보헤미안의 피가 흐르는 가난한 예술가, 그 자유분방한 끼가 결국 일을 저질렀지만 자기 딸을 끔찍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보살피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역전에서 처음 만났을 때 마냥 수줍어 아빠 뒤로 숨던 애가 하루 만에 친숙해졌다. 가끔 다가와 뭐라 종알대는데, 알아듣지를 못하니 답답할 뿐이다. 이들 모녀를 보면 왠지 옛날에 보았던 영화 “레옹”이 자꾸 생각난다. 물론 이야기는 매우 다르지만…. 그러나 넉넉지 않아도 특별히 아이 사랑이 많은 프레드를 보아 이들의 삶이 해피엔딩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오후 2시경 마나를 여동생 집에 내려놓고 우린 북부 바닷가로 행했다. 중간에 온통 장미꽃으로 뒤덮인 보보(Bourbourg)라는 북부의 작은 도시에 들러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빛의 교회당(The Chapel of Light)”을 찾아갔다. 교회의 원이름은 “생 종-밥티스트 교회(The Saint Jean-Baptiste Church)”로 12, 3세기의 고딕 성당으로 시작되어 15세기와 17세기 보완과 증축을 통해 1920년대 역사적 건축물로 지정되었는데, 2차 대전 중 폭격으로 상당한 부분 훼손된 것을 전후 여러 번의 복원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교회의 내부는 이름에 걸맞게 직사각형의 수직 색유리 창으로부터 외부의 빛이 아름답게 비치고 있었다.

특히 이 교회당은 전후 복원과정에 참여한 영국의 현대 조각가 앤서니 카로(Anthony Caro)의 작품으로 더 유명해졌다고 했다. 그는 런던 왕립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1950년대 헨리 무어의 조수로 일한 바 있으며, 특히 철조에 능했다고 한다. 교회당의 원형 벽면의 하단부와 십자가를 비롯한 각종 집기가 그의 작품으로 되어있었다. 두툼한 철판과 쇳덩이를 떡 주무르듯 한 작업을 보며 거장의 면면을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와 영국은 100년 전쟁을 치른 숙적관계였다. 우리와 일본이 그랬듯이 이웃 잘못 만나면 삶이 고달파지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된 부분이다. 영국과 많은 애환을 간직한 도시, 로뎅의 작품으로 익숙한 도시 칼레(Kalais)도 바로 인근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바다를 보기 위해 곧바로 도버 해협으로 향했다. 바다는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으로 한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기가 들었다. 그러나 해변엔 세찬 바람을 이용한 해상레저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곳은 2차 대전 중 독일군이 연합군의 상륙 예상 지역으로 꼽고 만반의 준비를 했던 곳이라서 아직도 그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그러나 연합군의 상륙은 별안간 해안이 험난한 노르망디에서 기습적으로 감행되는 바람에 나치는 헛수고하고만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병법을 알고 잘 활용하면 낭패 보는 일을 사전에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전망대
프랑스 최북단 칼레(Kalais)의 언덕에서 사람들이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이 해협의 저편은 영국의 땅이다. 지금은 해저터널이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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