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응우의 자연미술 이야기, 숙주와 기생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2.27 08:59 의견 6
금강교 아래로 흐르는 금강, 멀리 공주의 신시가지와 현대식 건물이 보인다.
반원들 :강변의 돌들로 물가에 장식처럼 반원의 형태를 연속적으로 그린다.
반원들 :강변의 돌들로 물가에 장식처럼 반원의 형태를 연속적으로 그린다.

입춘 무렵 포근했던 날씨가 우수를 지나며 갑자기 사나워졌다. 3일 밤낮으로 세찬 비바람이 몰아쳤다. 강원도 산골은 때늦은 폭설로 몸살을 앓고, 작업실 뒤편 계룡산은 다시 겨울로 접어든 듯 산 중턱까지 흰 눈을 뒤집어썼다. 이렇게 날씨가 급변하면 전에 없던 걱정거리 하나가 늘었다. 그것은 “혹시라도 이것이 지구환경의 변화 때문은 아닌가?”하는 염려다.

지구 없는 인간의 삶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연 속 미술 연구를 거듭할수록 자연환경의 위기에 대한 염려가 커진다. 어떻게 하면 건강한 지구를 오래 존속시킬 수 있을까? 인류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우리 몸 안의 기생충은 사람이 먹은 음식물에서 영양분을 섭취하며 우리 몸 안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기생충은 자신의 존속을 위해 숙주의 건강을 완전히 망가트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기생을 유지한다고 한다.

부서진 돌들

4대강 사업 중 중장비에 깔려 부서진 돌들을 모래 위에 복원함. 개발의 핑계로 부서져 버린 자연을 상징적으로 표현함.


인간중심의 사고가 아닌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매우 객관적 관점에서 지구와 인간의 관계는 숙주와 기생의 관계로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앙에 가까운 기상이변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이 위험천만한 증거들이 대재앙의 서막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과학자나 환경연구가들이 경고하는 바와 같이 지구의 환경위기가 임계점을 넘어 자정능력을 상실할까 염려된다.

나비, 금강보의 물을 빼고 나니 물이 고였을 때 가라앉은 퇴적물들이 두껍게 쌓인 채 말라버렸다. 그 위에 놓인 죽은 조개 또는 부유물 등을 있는 그대로 활용한 작업이다.
선, 금강보의 물을 빼고 나니 물이 고였을 때 가라앉은 퇴적물들이 두껍게 쌓인 채 말라버렸다. 그 위에 놓인 죽은 조개 또는 부유물 등을 있는 그대로 활용한 작업이다.

필자는 금강과 왕촌천이 만나는 곳에서 나고 자라서 유년기인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나의 고향 공주의 금강수계 주류와 지천의 환경적 변화를 익히 알고 있다. 나의 10대 유년 시절 강변마을 사람들은 금강물을 길어다 밥을 짓고 마시는 물로 사용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강이나 개울에서 물놀이할 때도 갈증이 나면 물고기처럼 강물을 마셨었다. 어쩌면 강변마을 사람들에게 강은 생사고락을 함께한 생활의 터전이었다. 나의 중학교 시절 강을 건너 등하교할 때 금강철교에서 강을 내려다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과 중 하나였다. 그때는 마치 거울 속처럼 물이 맑아 강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며 물고기들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은 물론 그들의 유영도 살필 수 있었다.

금강의 이끼류, 보기엔 맑은 물이지만 옛날엔 볼 수 없었던 이끼들이 모든 조약돌과 모래를 덮었다. 가운데 이끼가 끼지 않은 돌이 이 작업의 오브제다.


강물이 급속도로 더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 산업화를 가속화 했던 나의 10대 후반 - 대전지역에 대규모 산업시설이 들어설 무렵부터다. 금강 중류 지역인 이곳에 방직공장, 피혁공장이 들어서자 염색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수가 금강으로 유입되면서 문제가 가중된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금강에서 친구들과 물놀이하다 전신이 따끔따끔하는 통증을 느낀 것이 처음 겪은 불유쾌한 강의 기억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맨눈으로 물속 바위틈에 끼인 조개를 잡을 만큼 물이 맑았었다. 그 이후 통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강에서 물놀이는 더 이상 하지 못하였다. 마시는 물로 쓸 만큼 맑은 물이 10년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금강의 팬데믹 계절, 코로나의 대유행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다. 그 후유증은 비단 인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금강은 유유히 흐르고 철교는 제자리에 서 있지만 맑은 물빛은 간데없고 칙칙한 회색 물줄기만 슬픈 노래를 들려줄 뿐이다. 맑은 물 수없이 많았던 어족과 조개류들, 물놀이는 덤이었던 이름다운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가?

오늘 우리는 망가진 추억에 대한 그리움보다 더 망가트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만이 하나뿐인 이 지구를 서식이 가능한 땅으로 남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날아 볼까? 조개들이 나비가 되었다. 과연 저들도 하늘을 날 수 있을까?
배, 지금은 사라진 모습이지만 옛날에는 나룻배가 있었다. 사공이 노를 저어 강을 건너던 시절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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