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희 수필】산티아고 연가 9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4.01.25 07:41 의견 2

라바날 델 까미노Rabanal del Camino에서 몰리나세까Molinaseca까지 가는 길은 24.7km로 힘들지만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구간이다. 이 구간은 전체 여정 중 가장 높은 푼토 알토Punto Alto (1515m)와, 순례의 절정인 푸에르트 이라고Puerto Irago(1505m)에 위치한 ‘철의 십자가Cruz de Ferro’를 지나는 구간이다. 가쁜 숨을 거칠게 내쉬게 되는 가파른 오르막에서 나는 “십자가 지고 가시는 내 주의 크신 고통을”(가톨릭 성가 123) 부르면서 '성 야고보 순례길'의 영원한 상징인 철의 십자가 앞에 드디어 도착했다. 여행 중 내내 나와 동행했던 소망의 조약돌들을 배낭에서 꺼내 철의 십자가 앞에 봉헌하고 두 손을 모아 고개 숙여 모든 소망을 담아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철의 십자가를 둘러싸고 4~5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기도하는가 싶더니 눈물을 소매로 훔쳐내며 누군가의 사진을 기다란 십자가 기둥에 붙여놓는다. 기둥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과 사진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이곳뿐 아니라 순례길 곳곳에 십자가 주위에는 여지없이 소망의 조약돌들이 빼곡히 놓여있었는데 “대한민국 파이팅!”이란 글자를 보고 울컥했었다. 순례길에서 대화를 나눈 적 있는 눈빛이 참으로 선한 슬로베니아 여인도 철의 십자가에서 내려오면서 눈이 빨개졌다. 살짝 포옹해줬더니 나를 마주 안으며 한참을 울었다.

인간의 기쁨과 슬픔, 고통과 행복은 모두 눈물과 노래로 표현되고 해소되는가 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내가 부른 연가는, 쓸데없는 근심 걱정을 모두 털어버리고 순수히 그분께 순응하며 살겠다는 순례를 통해 얻은 깨달음의 편안함에서, 그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절로 노래가 되어 흘러나온 것 같다. 스페인 산티아고의 끝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길들은 나의 어릴 적 오랜, 길에 대한 향수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향수를 말끔히 씻어주고도 남았다. 나는 원없이 걷고 또 걸었다. 재어보니 일상생활을 제외한 순례길만 총 34일간 800.87km, 약 196시간, 하루평균 5시간 7분 걸었다.

나의 목표는 각 마을의 알베르게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것도 나의 목표가 아니었다. 야고보 성인이 걸었고, 내가 걷고 있던 그 순간, 그 길이 바로 나의 꿈이고 목표였다. 그러기에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나에겐 소중했고, 걷고 있던 그 순간 한순간들이 모두 나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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