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수 시인의 '시 한 편, 숨 한 번'/박경희, 「강재미」, 고증식 「의자 때문에」

연기 10. 연기적 인과는 선형적 인과를 뛰어넘는다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10.12 06:57 | 최종 수정 2023.10.16 15:06 의견 0

연기 10. 연기적 인과는 선형적 인과를 뛰어넘는다

- 박경희 짧은 이야기 「강재미」/ 고증식 「의자 때문에」

연기법은 조건에 따라-함께-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인과적입니다. 하지만 그 인과관계가 매우 중층적으로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선형적 인과관계로는 지극히 적은 부분만 설명됩니다.

그래서 이진경님은 연기적 인과를 현대과학의 개념으로 넓혀서 사유합니다.

“연기적 사유란 연기적 조건에 따라 모든 것의 본성이나 작용이 달라짐을 보는 것이다. 인과법칙 또한 연기적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이때 ‘연기적 조건’이란 과학에서 사용하는 ‘초기 조건’과 가까운 의미를 갖는다.”(이진경 『불교를 철학하다』 63쪽) 그 인과관계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연기적 조건, 혹은 초기 조건의 차이가 클수록 반복되는 현상에서 결과의 차이도 클 것이다. 이 차이가 크면 클수록 예측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나비효과는 초기 조건의 효과가 애초 변수의 인과관계를 초과하는(‘무시하는’이 아니라) 차이를 만들어냄을 뜻한다. 연기적 조건이 분석적 인과성을 초과하는 극적인 사례인 것이다.”(이진경 『불교를 철학하다』 66쪽)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초기 조건에 해당하는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 일어나는 자연현상 가운데 선형적 관계는 찾기 어렵다. 대부분의 현상은 실제로는 비선형적이기 때문에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고, 동일하게 반복하지 않는다. 반면 연기적 인과성은 연기적 조건이 두 변수 간의 관계에 언제나 더해져야 할 또 다른 ‘변수’로 본다. 나아가 그 연기적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을 고려하면, 어떤 하나의 사건도 사실은 수많은 변수의 연쇄라고 해야 한다.”(이진경 『불교를 철학하다』 69쪽)

그래서 연기적 조건에 대해 우리의 분별심에 의한 인과관계로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음 짧은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강재미

- 박경희

바닷가 근처에 강재미 회무침을 아주 잘하는 집이 있었다. 그 집 주인 할머니는 욕을 엄청나게 잘했다. 있는 욕, 없는 욕, 만든 욕, 어디서 주워 온 욕까지 하나 보탬도 뺌도 없이 있는 그대로 잘했다.

그 집은 옛날 집으로 다 쓰러질 듯 위태롭게 앉아 있는데, 바닷바람이라도 세게 부는 날이면 집 전체가 몸을 트는 것 같아서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집에 도깨비가 있는지, 강재미 무침 하나로 대박이 났는데 차진 욕도, 허름한 욕도 잘 버무려서 내놓으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먹었다. 그런데 그 힘을 빌려서 썼는지, 아니면 도깨비가 길 건너 칼국숫집으로 갔는지 모르겠으나 허름해서 더 마음 갔던 그 집을 넓히고 새롭게 지으면서 손님이 점점 줄어들었다. 맛은 변하지 않았으나 가게는 썰렁했고, 주인집 할머니는 따개비처럼 바닷가에서 떠날 줄 몰랐다.

(* 강재미: 가오리 새끼)

시를 읽는 저도 허름해서 더 마음이 갔던 그 집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 안타깝습니다. 더 잘 해보려고 집을 넓히고 새롭게 지었는데 오히려 손님이 줄었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변수 중에서 손님에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부분만 바꿨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이 글을 쓴 작가도 알 수 없다는 면에서 도깨비 이야길 하지만, 모르지 않다는 면에서 ‘할머니의 욕-강재미 무침-낡은 집에 대한 묘사’의 어울림을 기막히게 표현합니다. 비록 우리의 분별적 생각이 미치지는 못하지만, 어렴풋이 연기적 조건의 어울림이 깨졌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초기 조건(욕-음식 솜씨-낡은 집이라는 세 가지 변수)과 그에 이어진 중층적 인연 관계라는 변수가 달라지면서 벌어진 현상입니다.

그래서 다음 말도 귀에 쏙 들어옵니다.

“분석적 인과성에서는 두 변수 간의 인과관계가 필연적이어야 한다. 반면 연기적 인과성은 필연성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 연기적 조건이 있다고 항상 특정한 결과가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건 아니다. …수많은 요인이 물고 물려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폭풍의 연기적 조건을 이루는 몇 가지가 있다고 해서 항상 폭풍이 부는 건 아니다. …연기적 인과성 안에는 우연성이 필연성 못지않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이진경 『불교를 철학하다』 72쪽)

시를 한 편 더 읽겠습니다.

의자 때문에

- 고증식

오랜 단골 미장원 집 부부와

소주 한잔 나누는 자리

어쩌다 부부가 됐냐 물으니

식당에서 처음 중매로 만났는데

첫 만남 자리에서

의자를 뒤로 빼주더란다

경상도 남자 같지 않은

낯선 매너에 그만 이 꼴이 났단다

이건 절대 농담이 아니라고,

그놈의 의자 때문에 그랬다고.

의자에 혹해 삐끗했다는 인생 곁에

의자 빼주고 성공했다는 인생 앉아

하회탈로 웃고 있다

의자 때문에 망쳤다는 인생이나

의자 덕에 땡잡았다는 인생이나

오누이처럼 닮았다

인륜지대사라고 하는 결혼이 “의자 때문에”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사람의 인연이란…’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럴 만도 한 게 맞선 보는 자리니 이런저런 조건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온갖 굵직한 기준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연기적 순간, “첫 만남 자리에서/ 의자를 뒤로 빼주더란다/경상도 남자 같지 않은/ 낯선 매너”가 마음에 들어 한 사람을 남편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보통 우리는 큰일이 있을 때는 그에 맞는 큰 결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큰 결단을 하는, 그래서 연기적 조건의 자연스러움을 잃은 행위들이 오류를 낳습니다. 연기(緣起)의 뜻을 ‘조건들이-함께-일어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조건은 “사실은 수많은 변수의 연쇄”입니다. 초기 조건이 너무 복잡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 순간 연기적 조건에 스며있는 마음들에서 새로움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을 자기 마음으로 하여 행동해야 합니다. 두 분이 그럴 수 있는 마음 상태였기에 “의자에 혹해 삐끗했다는 인생 곁에/ 의자 빼주고 성공했다는 인생 앉아/ 하회탈로 웃”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그처럼 연기적 조건에 스며있는 마음을 서로의 마음으로 하여 삶의 길을 갔기에 “의자 때문에 망쳤다는 인생이나/ 의자 덕에 땡잡았다는 인생이나/ 오누이처럼 닮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삶은 다른 것에 눈 돌리지 않고 늘 지금 여기의 연기적 조건에 충실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삶을 사랑할 줄 아는 긍정하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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