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귀촌 91/ 김여사의 현장 단상: 벽돌집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9.18 06:46 의견 0

“조적은 최소한 12월 초순까지는 마치는 것이 좋습니다”

건축시공 현장 소장과 건축가를 함께 만나 공정표를 두고 논의하면서 들었던 말이다.

12월 준공을 목표로 한 집 짓기는 새해를 맞이하면서도 진행 중이다. 건축주의 바람대로 공정은 진행되지 않고 겨울 공사가 되면서 날씨의 변수 또한 잦다.

문득 빨간 머리 앤의 말이 떠오른다.

“엘리자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걸요!”

벽돌은 입고되어 공사장 바닥 귀퉁이에서 비닐로 보양된 채 한파를 견디고 있었지만 속옷도 갖추지 않았는데 겉옷부터 입을 수는 없는 일이다. 갑작스러운 눈소식으로 한 주를 보내고, 한파 소식에 또 한 주를 보냈다. 낮 기온이 다소 누그러져 영상이었지만 밤에는 격차가 심한 영하로 떨어져 3주간 벽돌 팔레트는 묶여 있었다. 그러다 이상기후가 왔다. 낮에 전국이 영상 10℃ 이상 (서울 13℃ 제주 20℃) 올라가고 밤에도 영상이 유지되는 이상기후였다. 뉴스에 북미지역은 50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혹한과 폭설의 겨울 폭풍에 시달린다고 하면서 스위스 들레몽의 새해 첫날 기온은 20.2℃로 관측 역사상 가장 놓은 1월 기온을 기록했다고도 한다. 화면에는 남유럽 어느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모습을 비추어 준다. 이상기후다. 평소 같으면 이상기후 소식에 위기감을 느꼈을 내가 이번 주에 벽돌 쌓기를 한다는 소식에 감격까지 했다.

지난주부터 날이 풀리고 봄기운이 묻어나는 영상이 지속되자 나는 ‘낮에라도 벽돌을 쌓으면 되지 않냐’고 물었지만 밤에 뚝 떨어지는 기온의 격차로 낮에 쌓은 벽돌이 양생이 제대로 되지 못한 채 얼었다가 다시 녹게 되면 100% 하자라고 한다. 그래서 조적공들에게 겨울은 일거리가 없고 겸손해지는 계절이라고 한다. 이번 주 이상기후는 벽돌 쌓기에 무리수가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조적 반장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홉 분을 모시고 와서 우리 집과 이웃집 두 채의 조적을 시작하셨다. 3주째 팔레트에 묶여 있던 벽돌이 드디어 풀렸다. 아침에 서둘러 현장에 갔는데 벌써 몇 단을 채워가고 있었다.

처음부터 벽돌집을 계획한 것은 아니다. 계획은 스터코 플렉스였다. 벽돌집이 더 좋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건축비가 그 이유였다. 그런데 좋은 벽돌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벽돌집을 짓게 되었다. 스터코 플렉스보다 아마 조금 더 건축비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나는 비교하지 않고 쉽게 결정을 바꿨다. 흔히 말하는 벽돌의 단점은 물을 흡수한다는 건데 국산 재료와 다른 재질의 점토를 사용해 만든 벽돌은 흡수력이 낮고 우리나라 흙으로는 다양한 벽돌색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나의 어설픈 지식(건축과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서 알게 된)이 한몫 단단히 했다.

<외관은 마을과 잘 어우러지고 신축의 티가 나지 않는, 마치 예전부터 마을에 있었던 것 같은 모습을 원합니다. ‘밖에서 어떻게 보일까’보다는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우선 생각합니다. ‘어떤 집에 살고 싶다’ 보다는 ‘어떤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입니다. 그 어떤 집이란 손녀에게 또 제 자식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의 마지막 좋은 기억이 담기는 집이면 좋겠습니다>

위의 내용은 건축가가 ‘어떤 집을 원하는가’에 대한 우리의 대답이었다. 벽돌은 기능면에서 단순히 외단열재 역할뿐 아니라 치장재 역할도 톡톡히 한다고 생각한다. 치장재가 어떤 액세서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시간의 무늬를 덧입힐 치장재라고 생각했다. 내가 선택한 벽돌색이 흔치는 않았지만 튀는 색이 아니고 표면이 매끈하지 않아 내가 생각하는 외관, 마을에 묻히는 집이 될 것 같아서 기쁘게 선택했다. 오래된 남성복 정장 광고 중에 ‘막 사 입어도 1년 된 듯한 옷, 10년을 입어도 1년 된 듯한 옷’이라는 카피가 기억에 있다. 나는 옷을 사면 오래 입는 편이고 편한 옷을 즐겨 입으며 지루해하지 않는 편이다. 벽돌집도 이와 같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 지루하기는커녕 시간의 무늬가 덧입혀질 것이라 생각했다.

스카이텍스 속옷 위에 겉옷이 입혀지고 있는 벽돌 쌓기 현장에서 나는 다시 꿈을 꾼다. 쌓아진 곳에 가서 사진을 찍는다. 가까이에서 찍고 멀리서도 찍는다. 찍은 것을 줌인했다가 줌아웃하기를 거듭한다. 아직 줄눈(메지) 시공을 하지 않았는데 줄눈 시공을 하면 그 느낌이 어떻게 달라질까도 궁금하다. 빛과 벽돌의 하모니가 사계절동안 어떻게 변하는지 보고 싶다.(글 김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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