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눌노리 2/ ‘어쩌다’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9.16 04:48 의견 0

어쩌다 눌노리에 집을 짓고 날마다 살고 있다. 정말 ‘어쩌다’이다. 15 가구가 함께 땅을 사고 분할하여 집을 짓고 마을을 만들기로 했다. 나는 아는 사람이 한 사람(남편)밖에 없으니 ‘어쩌다’는 적절한 표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덜미 잡혀 집을 짓고 살게 된 것도 아니다. ‘어쩌다’는 ‘어쩌다가’의 준말이다. 도대체와도 잘 어울린다. ‘도대체 어쩌다가······.’ 내가 여기에 집을 짓는다고 했을 때 모두의 첫말은 “왜???”였다.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고 싶다더니 집을 짓고 살겠다고? 도대체 왜? 무슨 일이?

‘어쩌다’의 사전적 풀이는 ‘무슨’ , ‘웬’이다. 의지와 상관없이 뜻밖에 우연히 일어난 일을 설명하기도 한다. 우연의 반대말은 필연이지만 나는 선택을 놓고 싶다. 필연이라면 운명과 가까워 마치 내가 여기 살도록 운명 지워진 것 같아 거북하기 때문이다. ‘우연’과 ‘운명’에는 선택이 들어설 자리가 없지만 의지에는 선택이 자리한다. 누구나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으니 이제 나는 그 이유를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날마다 여기에서 산다. 아직은······.

마을을 준비하고 집을 지으면서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화두를 던지며 관계된 책들도 읽었다. 귀농하여 마을 만들기에 20여 년을 보낸 사람의 책에는 마음을 다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순정한 마음'과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만나 귀촌을 했지만, 계획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초심과 구상은 표류했다고 고백한다. 책을 읽을 때는 '어려운 일이구나, 나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우선 아웃사이더가 되지 않도록 해야겠구나‘ 정도 생각했다. 모여 살면 마을이라는 단순한 생각도 한참 모자란 생각이었다. ’마을'과 ’동네‘를 구분하여 생각해 보았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마을‘은 주로 시골에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이며 ’동네‘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여러 집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한다. 여러 집이 모여 있다는 곳이 같고, 시골에서 모여 사는 곳이라는 것이 다른 점이다. 삶(생활)과 일(생업)이 하나의 시공간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 마을이며, 일(생업)과 생활이 분리되는 경우가 많은 도시는 동네라고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다. 공동 양식 주택에 익숙한 나에게 집은 거주의 개념이 강하다. 마을은 거주의 개념을 뛰어넘는 차원이다. 나에게 그것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길이다. 마을 만들기에 합류했던 사실이 점점 무겁게 다가온다. 그야말로 현타다.

미국의 경제학자 스콧 니어링과 헬렌 부부는 ’미친 사회‘라고 규정한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으로 생태적 자치 사회를 몸소 실천하려고 자발적으로 귀농했다. 매일 자연과 하나 되는 조화롭고 단순한 그들 부부의 삶에는 4:4:4의 원칙이 있다. 4시간 일(육체노동으로 절반 이상의 자급자족 목표)하고 4시간 배우며(읽거나 쓰는 지적 활동) 4시간 쉬거나 놀며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시간을 안분했다. 전농으로 귀촌하는 것이 아니므로 내게도 시간을 안분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니어링과 헬렌 부부가 자발적으로 귀농한 것처럼 나도 우연이 아닌 선택의 삶이어서 날마다 땅과 생명체들을 가꾸며 여기에서 살고 있다.(글 김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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