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노리 산책/ 유酉선생의 먹는 일과 먹이는 일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9.15 06:00 | 최종 수정 2023.09.15 08:14 의견 0

유酉선생의 먹는 일과 먹이는 일

먹어야 산다. 사람도, 모든 생명체도 마찬가지다. 따지자면 먹고 사는 일만큼 치사한 것도 없지만, 한 끼 먹고 살 거리를 마련하는 일만큼 눈물겹고 거룩한 일도 없다. 어린 것들을 먹이기 위해서 시장 좌판에 앉아 있던 어머니들 덕분에 지금 서울 한복판 고층 빌딩에서 넥타이를 매고 거들먹거리는 아들들이 사는 것이다.

사람 자식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목숨 있는 것들을 키우는 것은 애틋한 일이다. 스스로 먹을 수 있기까지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도 다른 것들에 비하면 유酉선생 붙이는 먹는 일에 자립이 가능한 것 같다. 병아리 수준만 지나도 먹을 것을 찾으러 다닐 줄 안다. 동물성이든 식물성이든 먹는 것을 가리지 않으므로 마당이든 울타리 안이든 어느 정도 공간만 있으면 굶어 죽을 것 같지는 않다. 풀이 있으면 풀을 뜯고, 땅을 파서 지렁이나 벌레를 잡아먹고, 심지어 낮게 나는 날것들을 뛰어서 잡아채기도 한다. 잡식성이야말로 유酉선생들 삶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또한 유酉선생들의 식탐은 놀랄만 하다. 보통 다른 동물들은 어느 정도 먹으면 먹기를 그치는데 반하여 유酉선생들은 먹는 것을 하루 종일 그치지 않는다. 양이 얼마나 큰지 작은지 알 수 가 없다. 먹이를 다 먹고 나서도 돌아다니면서 땅을 파고 먹을 것을 또 찾는다. 먹이를 찾기 위해서 땅을 파려고 뒷발질을 하는데, 그 힘이 보통이 아니다. 유酉선생들 뒤에 서 있다 잘 못하면 뒷발질에 날아오는 돌멩이를 맞을 수도 있다. 휴식 없는 먹이 노동과 먹이에 대한 집착이 유酉선생을 인류 역사와 함께 한 가축계의 지존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먹을 때 모습을 보면 사는 것의 치열함을 느낀다. 먹을 때 옆에서 누가 서성거리면 사정 볼 것 없이 힘센 자가 약한 것을 쫀다. 약한 것들은 먹을 것을 물고 다른 곳으로 달려가 먹는다. 누가 벌레라도 잡으면 뺏어먹으려고 달려들고 내빼다 결국 나눠먹기도 한다. 어느날 남은 국수라도 주면 하늘을 올려다 보며 고개를 주억거리며 면발을 후루룩 거리는 모습은 보기에 좀 우습기도 한데 우리 손녀 이현이가 아기였을 때 라면 먹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또 이놈들이 가끔 땅이나 돌에 부리를 왼쪽 오른 쪽으로 닦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먹고 나서 입을 닦는 것인지 부리를 벼리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렸을 때 어머니는 집 마당에 놓아 키우는 닭들에게 따로 먹이를 준 것 같지는 않다. 하루종일 마당에서, 남새밭에서 두엄더미에서 먹이를 찾아 먹던 닭들에게 부엌 설거지 하고 남은 물을 뿌려 그 속에서 담긴 찌꺼기를 준 정도가 아닐까 하는데, 세상이 변해서인지 이제 모든 동물들이 사료를 먹고 산다. 지금은 사람이 먹이를 주는 일 없이 유酉선생들의 독립이 가능하지 않다. 닭은 물론 개도 고양이도 심지어 소도 사료를 먹는다.

우리에게 닭을 키우게 만든 이선생님 부부는 우리 닭이 알을 잘 낳지 않는다고 걱정에 걱정을 하신다. 괜찮다 괜찮다 하는데도 급기야 알 잘 넣는 자기네 닭을 한 마리 가지고 오셨다. 그게 뉴픽이 우리 집에 오게 된 사연인데, 그런데 문제는 그 알 잘 낳는 닭이 우리 집에 와서는 알을 안 낳는 것이다.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보니 바로 먹이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상품이 되지 못한 찹쌀을 누가 주어서 먹이는데, 뉴픽은 원래 제집에서 사료를 먹었던 것이다.

사료 때문이라면 사료가 수상하지 않은가?. 사료가 알을 잘 낳게도 하고 안 낳게도 한다면 사료가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고,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주는 먹이라면 닭에게도, 그 알이나 고기를 먹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닭 사료라는 것이 사실 옥수수를 갈아 만든 것인데, 옥수수 사료는 분명 GMO가 분명할 듯하다. 그렇다면 양계장의 닭들이 낳는 알들과 공장식 양계장에서 3개월 크다가 우리 입에 들어오는 이른바 국민 식품 저 치킨들은 또 어떤 것들인가? 물이 없어서 비소가 녹아든 물을 알면서도 마시는 개발도상국들 사람들이나, 거부할 수 없는 다국적 곡물 기업의 지배 속에 살고 있는 우리나 결국 마찬가지가 아닌가?

우리 집에서 나오는 음식 찌꺼기를 처리하기 위해서 키우기 시작한 닭이 숫자가 늘어나면서 어쩔 수 없이 사료를 먹이게 시작했는데, 자원순환의 선순환 목적이 이런 식의 사료 공급체계에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달걀이냐? 음식 잔반처리냐를 선택해야 한다. 사람 앞에서도 유酉선생 앞에서도 먹는 일이야말로 가장 윤리적이어야 하는데 말이다.(글 전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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