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호의 조지아 여행기/조지아에서 난, 조졌네

중앙교육신문 승인 2023.05.26 08:52 | 최종 수정 2023.05.26 09:00 의견 0

조지아에 왔다.

수도 트빌리시 중심가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숙소에 묵고 있다. 우리가 5일 동안 머물기로 한 이 동네는 황량하다. 허름한 카센터와 공업사, 세련된 세차장과 러-우크라이나 전쟁터 같은 폐차장이 동시에 공존하는 살풍경이다. 대로변 안쪽 마을에는 새로 지은 숙소들이 많다. 최근 건축붐이 불어 신-개축하는 공사장들. 약 일 년 전, 러-우크 전쟁이 나자 러시아 청년들이 군대 안 가려고 이웃 나라 조지아로 도바리 쳤고 적지 않은 우크라이나인들이 피난 와서 방세와 집값을 왕창 올려놨다.

우리가 묵은 호텔(Tbilisi Sea Hotel)도 지은 지 얼마 안 된 듯하다. '바다호텔'이라면 주변에 바다가 있는 줄 알았다. 개뿔! 해변은 커녕 흙탕물만 즐비하다. 하여 마트와 식당 가려고 인도와 대로를 걸을라치면 진흙탕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쓰면 떫지는 말아야지, 뭔 놈의 차들은 무에 그리 빨리 달리는지. 이 호텔은 지상 2층, 지하 1층. 1~2층은 숙소로 사용하고 쥔장의 가족은 지하에 산다. 이 부부는 30대 초반이고 세 살된 아들이 있다. 쥔장은 젊은 나이에 조물주가 부러워하는 건물주가 돼 비교적 풍요로운 살림살이를 하는 듯하다.

집주인은 겸손하다. 그가 투숙객보다 낮은 곳에 산다는 것은 일단 겸손하다는 마음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이튿날 와인따개 빌리러 주인이 사는 지하실 집으로 내려 가봤다. 너른 주방에 테이블 세 개가 놓여 있다. 내가 인기척을 냈건만 아이의 목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누구 하나 나오질 않았다. 큰 소리로 그들을 출동시키려는 걸 참았다. 괜히 가족의 일상을 갈굴 것 같아 관뒀다. 어쩔 수 없어 내 맘대로 주방에서 와인따개 챙겨서 나왔다. 지하 공간이 상당히 넓어 밝고 쾌적했다. 이 집처럼 지층도 잘 설계하고 꾸미면 쾌적한 거주가 가능하다는 샘플을 봤다.

남조선 인민의 정서 상 낮은 데로 임하는 사람을 보면 옷깃을 여미며 상대를 다시 보곤한다. 석가와 예수, 마흐메트도 늘 낮은 곳에서 백성과 딩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사람은 최소한 막돼먹은 금자씨 같은 사람은 아니라는 판단이 서 안심이 됐다. 주인이 여행객보다 낮은 데 사는 사람은 무조건 안심해도 된다. 다행히 닷새 동안 여행자 게스트가 호스트의 간을 안 봐도 되는 피곤함은 덜 수 있어서 좋았다.

방값을 떠나 좋은 여행은 숙소가 기본이고 먹는 게 더 중요하다. 그게 안되면 '기본'이 안 된 인간이고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없다. 다행히 우린 '기본'이 된 '중요'한 사람이 됐다. 숙소에 머문 사흘째 되는 날. 두 가지 참변을 겪는다.

여행자가 먼 나라 와서 가지가지하는 건 좋을 리 없다. 현지인도 그런 행위는 싸가지 없다고 할 터. 그것은 내 인생에 있어 임진왜란 급이었고 실로 '심심'하지 않은 진짜 '심심(甚甚)'한 사건이다. 두 가지 사연은 이렇다.

하나

이곳 숙소들은 가정집 같이 모양이 비슷비슷하여 헷갈린다. 특히 집집마다 대문이 거의 같아 실수하기 십상이다. 우린 아점 사료를 섭취하고 느긋하게 골목으로 접어든다. 바다호텔로. 짝꿍이 여기 아니라고 통박을 놓는다. 아뿔사! "여기가 거기가 아닌가베"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옆집으로 잘못 들어갔다. 다음날 저녁 어스름. 혼자 산책한 후에 호텔로 오다가 또 그 집구석으로 기어들어 갔다. 이런, 안에서 새는 바가지 나와서도 새는구나.

어떤 공간이나 장소에 잘못 들어가면 오입(誤入)이다. 오입을 인수분해하면 틀릴/그르칠 오, 들/들어갈 입이다. 긍게 장소와 공간, 사람이든 간에 어딜 잘못 들어가면 애러가 난다. 그렇다면 숙소를 두 번이나 잘못 들어간 나는 불결하게도 '오입'을 한 거다. 여행 와서, 여행이 아니어도 자기 방(집)은 잘 들어가야 하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다. 나는 기본이 안 된 놈이다. 아니 사람도 아니다.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더군다나 여긴 남의 나라 아닌가. 외국에서 '오입'이라니. 있을 수 없고 말도 안 된다. 남의 집에 잘못 들어가면 주거(주방?)침입에 해당돼 골치 아픈 사건으로 비화될 수 있다. 다행히 빨랑 알아차리고 빨리 나온다. 하지만 기분이 영 개운치 않다.

남의 숙소에 두 번이나 '잘못' 들어가고 '잘 못' 들어간 행위는 부끄러운 일이다. 다시 말해 나는 빼박 '오입쟁이'가 됐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나는 조지아 국민한테 얼굴을 들 수가 없고 무엇보다 부모와 조상 볼 낯이 없다. 양친이 나를 키우고,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했지 '오입쟁이'로 살라고 한 건 절대 아닌데 어쩌다 조지나, 조지아에 와서 오입쟁이로 전락한 것인지 기가 막힌다. 현재스코어 '오입쟁이'가 된 나. 이런 행태라면 여행이고 지랄이고 간에 심각한 문제다.

조지아에서 석달살이 계속 할 것인가, 아님 당장 때려치고 귀국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하늘이여, 이 일을 어찌 하나이까? 혹시 윤석열 정권은 해외에서 나 같이 '오입질'한 인간을 가만 내버려둘 것 같지 않다. 나라 망신시킨 놈은 검찰을 총동원해 출국정지가 아닌 입국정지를 시키지 않을까 걱정이다. 남조선은 검찰정부/압색정권이다. 석열이는 최근 한동훈이가 외국으로 출장갈 때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그 어려운 벽돌 같은 책 <펠로폰네스 전쟁사>를 가지고 다니는 것에 몹시 감동받아 즉석에서 대선후보로 밀 것임을 밀약한 듯하다. 오래 전부터 두 사람은 찰떡으로 합체하여 검찰과 경찰을 떡 무르듯이 핸드링하여 조국과 윤미향을 조지고 정권을 득템한 사이가 아닌가. 한편, 그들은 증거를 내놓지도 못하면서 이재명을 롱롱타임으로 사골이 다 빠지도록 '언론플레이-압색 -조사- 출두 -악마화'를 무한리필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나 같은 '오입쟁이'를 입국 못하게 하는 일은 '껌'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나는 '껌'이 돼 남한에 못 갈 수도 있다. 이러다가 조지아에서 인생 조지는 거 아닐까? '껌'으로 낙인 찍혀 앞날이 '껌껌해' 실로 두렵고 잠이 안 온다.

방구석에 쳐박혀 있는 건 여행자로서 직무유기이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간다. 작은 마트에서 조지아 와인(13.5도/ 레드/드라이/13라리. 1라리는 약 500원)한 병을 사고 맞은편 도로에 있는 간이음식점으로 간다. 여긴 술과 음료를 파는 우리나라 반찬가게 같은 식당이다. 간간히 주민들은 쇼케이스 안에 있는 메뉴(20가지) 중에 몇 가지를 골라 간다.

우리는 질 좋고 값싼 조지아 와인부터 깠다. 남조선에서 뼛속까지 스며든 습관, 바깥에 나온다고 샐 리 없지. 짝꿍과 나는 선주후사(先酒後事)로 달렸다. 하르초(양고기와 채소가 들어간 수프)와 채소샐러드, 토마(소고기를 갈아넣어 양배추로 말았다), 빵, 그당시 음식 이름을 알았는데 지금은 까먹은 두 가지를 시킨다. 여기가 좋은 건, 아무리 식당이 허름해도 바깥에서 술 사와서 맘컷 처마셔도 예스 오케이다. 조지아는 비자와 코르크 차지를 면제한 세계에서 가장 선진국이다. (개념 있는 음식점과 고급 레스토랑은 어떤지 모르겠다.) 이 얼마나 훌륭한 와인의 나라인가. 덕분에 야메로 포도주를 곁들이며 저렴하게 식사를 한다. 조지아 음식 다양하고 맛있다. 오 해피 데이!

짝꿍은 동물을 어여삐 여긴다. 어딜 가나, 외국에 나가도 개-고양이의 사료와 물을 챙긴다. 그이는 못 먹고 헐벗은 고양이와 개를 보면 주변 마트에 가서 물과 사료를 사서 그 동물들한테 준다. 나는 그게 마뜩찮아 그와 자주 다툰다. 심각하게 싸우기도 여러 번. 하지만 마이웨이. 끝끝내 '유어 웨이(Your way)'인 것을 어쩌겠는가. 동물을 사랑하고 그 복지에 열정인 것이 그녀의 성정인 것을. 사람은 각자 '벽(癖)'이 있다. 나는 책과 술, 산책과 음반에, 이 친구는 개와 고양이에 진심이다. 관계를 오래 지속시키려면 각자의 어쩌지 못하는 벽(癖)을 인정하는 아량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둘 사이이에 벽(壁)이 갈라져 관계가 파탄날 수 있다.

점심 잘 때려먹고 기분 좋게 길을 걷는다. 우리한테 큰 개가 어슬렁 저슬렁 쫒아온다. 조지아는 개가, 특히 덩치 큰 놈이 많이 돌아다닌다. 개를 싫어하거나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은 이 무슨 '개같은' 경우냐고 기겁할 일이지만 다행히 그들은 순하다. 왜 그런고 하니 개들이 도시의 식당가(사료 사정권)또는 식세권(식당이 가까운 지역)에 살아서 인간에 순치되었고, 먹을 게 늘 부족하여 기운이 없어 길바닥에 누워 있기 때문이다. 개들의 천년왕국이다. 큰 개가 우리 주위를 킁킁대며 다가오길래 나는 짝궁과 '교유'하는 그 개를 피사체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사진이 맘에 안들어 자꾸 차도로 뒷걸음치며 여러 컷 박는다. '결정적인 순간' 마지막 한 방 찍으려다 인도가 끝나고 차도 시작되는 턱에 그만 뒤로 홀라당 넘어진다. 곧 손을 털고 일어난다. 괜찮다, 다 괜찮다. 네 시간 지나, 오후 6시에 산책 한 시간 하고 방구석에 왔을 땐 발등이 아프기 시작한다. 왼쪽 발을 짚을 수가 없다. 근육이 좀 놀란 듯하다. 제주에서 3년 위안리치로 있다가 캅카스 국가에 오니 내 근육이 쫄았나보다. 씨발! 욕이 나온다. 좆됐다.

호텔 쥔장한테 파스 있냐고 하니까 그런 건 없고 무슨 맨소래담 같은 연고를 준다. 그것으로 다친 부위를 잔뜩 바른다. 바르고 나니 느낌이 나쁘지 않다. 그러구러 이튿날 아침. 여전히 다친 발등이 호전되지 않는다. 오줌 싸러 깽깽이발로 똥뚜간을 가고 하루종일 방구석에서 죽친다. 꼬박 하루를 집구석에서 요양한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오도방정을 떤건가. 이럴려고 조지아 온 건 아닌데.

다음날 아침 일찍 깬다. 다친 발을 만지고 디뎌본다. 왠걸 잘 디뎌지네. 이리저리 걸어본다. 옴 마니 반메 훔!을 부르짖으며 쾌재를 올린다. 이제 말짱하다. 발등 다 나은 날, 조지아 음식 가운데 대표적인 낑깔리로 점심사료 먹고 트빌리시 다운타운을 왕복 3시간을 걷는다.

ㅡ옴 마니 반메 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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