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티셔츠에 멋진 산과 파타고니아라는 글자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청년의 등판을 쫓아가다 돌아온 적이 있을 만큼 파타고니아는 나를 설레게 하는 곳이다. 원초적 영혼을 흔들어 놓는 파타고니아의 바람에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는 모습조차도 황량해서 아름다운 황무지의 벌판과 제 몸을 갈래갈래 찢어놓은 나무들의 등 굽은 모습을 상상한다. 그래서 더욱 가고 싶어 오랫동안 버킷리스트에 올려놓았던 파타고니아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파타고니아에 온 것이다. 어제 물수제비를 띄우던 그레이 빙하와 아름다운 설산 그리고 창백한 푸른색의 호수 등 토레스 델 파이네도 파타고니아에 속한다. 그러니까 파타고니아는 남미 최남부의 광활한 지대로 남위 40도 부근부터 55도까지 남쪽으로 길게 뻗은 지역으로 아르헨티나와 칠레 양국에 걸쳐 있다. 파타고니아라는 명칭은 1520년 최초 이곳 땅을 밟은 마젤란 원정대가 처음 만난 거대한 몸집의 원주민을 보고 발이 크다는 의미의 '파타곤(patagon)'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시 묘사된 파타곤(patagon)이란 평균키가 1.8m인 테우엘체어족인 것으로 추정된다. “바람은 울지 않는다. 오직 바람에 스치는 세상이 우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파타고니아에선 바람에 스치는 모든 사물들이 소리를 내며 운다.

바람이 태어나고 바람이 죽어가는 바람의 고향 모든 사물이 바람을 만나면 소리 내어 우는 곳 바로 파타고니아인 것이다. 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다 사람이 넘어지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최대 풍속이 60m/s를 넘는 일도 흔하다(보통 사람은 40m/s를 넘으면 넘어지거나 날아가기도 한다). 언젠가 TV에서 아르헨티노 호수 주변을 걷는 사람들이 바람에 휘청거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영국 탐험가 에릭 시프턴(Eric Shipton)은 파타고니아의 바람은 영혼을 흔들어 놓을 만큼 강력해서 파타고니아를 '폭풍우의 대지'라 불렀다. 그런 바람을 상상하며 파타고니아에 도착했다. 그러나 우리가 갔을 때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이라 매서운 바람을 만나지는 못했다.

칠레 쪽 파타고니아는 야생의 자연이라고 할 만큼 빙하와 설산 그리고 산악지형이 이어지고 도시는 푼타아레나스와 푸에르토나탈레스 그리고 토레스델파이네 공원이 대표적이다. 토레스델파이네 공원의 멋진 풍광 속으로 들어가 설산과 푸른 호수가 어우러진 풍경 속으로 스며들어 또 다른 풍경이 되어 보기도 하고, 회색 물빛과 회색이 자갈이 펼쳐진 그레이 호수에서 회색으로 떠 있는 빙하를 보며 물수제비를 띄우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띄운 물수제비의 물살은 빙하에 닿기 전 회색 물빛 속으로 사라졌다.

* 김양숙, 1990년『문학과 의식』시 등단, 2025년 탄리문학상 수상, 202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활동비 수혜, 2017년 [시와산문 작품상] 수상, 2013년 부천문화예술발전기금수혜. 2009년 [한국시인상] 수상, 시집 『종이 사막』,『지금은 뼈를 세는 중이다』,『기둥서방 길들이기』,『흉터를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고래, 겹의 사생활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