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Ph.D.)
일본 열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오키나와는 동양의 하와이인가? 과연 나하 국제공항은 오키나와현의 관문으로 일본 전역에서 국제선 6위, 국내선 4위의 중대형 공항답게 트랜스 오션 항공과 류큐 에어커뮤터의 허브 공항이었다. 오키나와 기본사항을 살펴보면 류큐 제도(琉球諸島)의 동중국해상에 160여 개 섬으로 이루어진바, 상주인구는 대략 150만 명에 좀 못 미치고 제주도보다 면적이 더 넓다. 그중 국제공항이 있는 나하(那覇, 31만 명 남짓 거주)는 현청 소재지로서 15세기까지 류큐 왕국이었다가 메이지 시대 일본에 강제로 복속되었다. 필자의 눈에 비친 첫인상은 현지 기후나 토양에 따른 생물계의 분포도부터 달랐고. 가지런한 거리, 매끄러운 도로, 살갗에 스치는 바람은 온난했다. 게다가 항간에 알려진 대로 5만8천 명의 미군이 주둔하는 후텐마 군사기지와 떨어져 있어 이른바 기지촌 특유의 기류를 곁에서 감지할 수는 없었다.
우미카지테라스(ウミカジテラス)를 돌아본 소감도 남달랐다. 기실 바닷가에 계단형으로 조성한 상가치고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는데, 거창하게 오키나와의 산토리니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더라도 하얗게 페인트칠한 시멘트 구조물에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다양한 카페 등을 갖추고 탁 트인 해변에 야자수들을 심어 코발트 물빛 바다와 어우러진 지중해 분위기를 연출한 정성이 가상했다. 압권은 나하공항과 인접한 장점을 살려 비행기들의 이착륙 장면을 손에 잡힐 듯 실시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다들 인증사진을 남기기 바쁜 모습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궂은비가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여의치가 않아, 우리 부부는 애써 발품을 팔며 잘 차린 상업 시설들을 흥미롭게 훑어봤다. 다소 차가운 날씨여서 굳이 아이스크림을 입에 대지는 않았고 돌아보면 볼수록 나름 묘미도 있어 눈요기하듯 반 시간을 보내기에 지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코우리지마대교를 지날 때 인솔자 겸 해설자는 연신 흐린 하늘을 탓하며 아쉬움을 쏟아냈다. 날씨만 맑았다면 팸플릿에 소개한 것처럼 해상대교 위에서 에메랄드빛 바다와 신선한 바람을 쐬며 아름다운 경치를 한껏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곧바로 일행이 찾은 만좌모(万座毛)는 높이 200m 석회암 절벽에 천연잔디가 자라난 코끼리 형상의 바위 절경. 명칭은 1726년 쇼케이왕이 행차할 때 '만인이 앉아도 충분한 잔디 벌판'이어서였다. 언뜻 제주도 섭지코지를 떠올릴 법한 장소로 다시금 일본인들의 정교한 시공기술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사실 여기는 오히려 범상한 지형이어서 짙푸른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는 점 말고는 딱히 기암괴석이라고 내세울 만한 여건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차제에 명승지 반열에 끼어들기 위해선 산호초를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잦고 강력한 태풍을 견뎌내는 스카이워크를 만들면 좋으리라.
나오는 길에 잠시 들른 코우리비치. 단지 혼선을 빚을 염려에서 짚고 넘어갈 일은 해중교는 해상교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海中橋’라고 함은 뉴욕이나 홍콩에 진입할 때처럼 바닷속을 통과할 때 설계한 다리를 가리킨다. 해설서를 보니 류큐 제도에서 가장 큰 오키나와섬은 길이 112㎞, 너비 11㎞, 넓이 1,199㎢, 아열대와 열대 기후대에 걸쳐 있어 산호초가 잘 자라고 감청색 바다와 흰 모래밭이 특징이란다. 어찌 이런 데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일으켰으며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가? 1945년 4월 미군이 전격 상륙작전을 감행했을 때, 일본군이 대항해 3개월간 목숨을 걸고 방어전을 펼침으로써 무려 10만 명이 전사했고, 종전 후 군정 통치에 있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됐으나 미군이 계속 주둔하면서 양국의 현안으로 남아있단다. 그나저나 일본문화 중 부러운 건 묘지. 자투리땅에 가족(가문) 단위로 소공원처럼 조성하니 말이다.
푸짐하게 차린 저녁을 맛있게 들고 연박 예정으로 여장을 푼 호텔은 나의 6번째 일본여행 가운데 가장 훌륭한 시설이었다. 동선이 편한 로비와 최적화한 비품은 그렇다 쳐도 정갈하고 조용한 주위환경은 물론 큼지막한 방에 둘이서 동시에 사용 가능한 욕실은 두고두고 추억할 만했다. 그간 자타가 공인할 만큼 굳어진 축소지향형의 평가를 한꺼번에 불식시켰을뿐더러 직원의 친절도 역시 만족스러웠다. 특히 아침 식사 때 지정 테이블로 안내하는 시스템은 일자리 창출을 염두에 둔 거라고 입을 모았거니와 우리도 이네들처럼 초임을 줄여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생의 계기를 마련할 수는 없을까 하는 바람이 생겼다. 비교적 가격대가 높은 백화점을 둘러본 뒤 원도심을 한눈에 아우를 수 있는 모노레일을 타보고 싶은 건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오키나와 해상교에서 바라본 코우리 비치 산책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