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전 인천산곡남중학교 교장)
올해도 예외 없이 한 해의 끝자락으로 접어들면서 붉은 자선냄비가 등장했고 대로(大路) 변의 사랑의 온도계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당신의 사랑의 온도는 몇도 입니까?”를 묻고 있다. 그곳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이 바쁜 일상속에서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풍경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앞에서의 짧은 멈춤이 오래 기억에 남는 배려와 나눔의 시간이 될 수 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교실 안에서의 이론 수업이 직접 삶의 현장에서,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행동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보다 살아있는 인성교육이 있을 수 없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담임교사를 맡고 있는 A는 매년 12월이면 학생들과 함께 등굣길 풍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날 그는 “여러분, 자선냄비를 본 적 있어요?”라는 질문으로 아침 조회를 시작했다. 이어서 기부를 강제로 권하거나 어떤 것이 정답인지를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 자선냄비가 왜 서 있을까요? 어떤 마음일까요?”를 묻고, 학생들의 생각을 차분히 들었다. 그날 수업 이후 몇몇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 자발적으로 동전과 소액의 지폐를 비롯한 용돈을 모았고, 누군가는 집에서 사연을 적은 손편지를 가져왔다. 이처럼 교사의 역할은 행동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성교육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학급 단위로 ‘겨울 나눔 일기’를 쓰는 활동을 진행했다. 담임교사인 B는 학생들에게 “돈이 아니라 마음을 기록하자”고 제안했다. 학생들은 자선냄비 앞에서 느낀 감정, 어려운 이웃을 떠올리며 했던 고민,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배려와 행동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다. 한 학생은 “금액은 작았지만, 넣을 때 마음이 커졌다”고 적었다. 이 짧은 문장은 인성교육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학생들은 생각보다 순수하고 단순한 특성이 강하다. 하지만 기부의 실천은 생각보다 깊고 진지하다. 한 고등학교 동아리 학생들은 자선냄비 활동을 계기로 지역의 복지관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지만, 반복되는 만남 속에서 학생들은 도움을 받는 사람을 ‘대상’이 아닌 ‘이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한 학생은 활동 소감에서 “누군가를 돕는 일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썼다. 이는 성취 중심 교육으로는 얻기 어려운 인간적•정서적 성장의 효과다.
위의 사례들은 결국 무엇을 시사하는가? 그것은 분명하다. 인성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교사가 마치 퍼스트 펭귄(First Mover)처럼 앞서 나가 끌어당기는 사람이 아니어도, 옆에서 함께 걸으며 방향을 비춰주는 동행하는 존재만으로도 우뚝 설 수 있다. 곧 자선냄비 앞에서 한 번의 멈춤, 한 번의 질문, 한 번의 공감이 학생의 삶에 오래 남는 가치로 자리 잡게 만드는 일종의 조기교육이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장면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 학교는 여전히 경쟁과 성과 추구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이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면, 우리는 성적표에 기록되지 않는 배움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타인의 어려움에 마음을 기울이고,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는 배려심과 경험은 민주국가에서 진정한 민주시민을 기르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여러 가지 경제의 한파와 물가 상승, 고용 불안 등으로 더욱 을씨년스러운 이 겨울,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당신의 사랑의 온도는 얼마입니까?” 이 질문에 교사와 학생이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인성교육이라 할 수 있다. 자선냄비 앞에서 드러나는 고사리 같은 손이 움직여 실천하는 작은 행동들이 모여, 우리 교육을 조금 더 아름답고 따뜻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행위도 습관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살아있는 인성교육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시민 육성이자, 인간 존엄에 대한 사상이고 행동이라 믿는다.
필자는 과거 학생들의 인성교육과 관련하여 ‘약방의 감초’처럼 애용하며 울림 있는 가르침을 전하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그것은 바로 타인을 위해 뜨겁게 자신을 태워 이롭게 하며 삶의 의미와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살아있는 교육의 일환이었다. 여기에 안도현 시인의〈너에게 묻는다>의 시구를 마지막으로 첨부하고자 한다. 이로써 부디 어려서부터 우리 청소년들의 가슴 속에 깊이 심어줄 수 있는 인성교육의 한 소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